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인생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공동연구 때문에 방학 동안 미국에 있는 대학에 한 달 머물렀던 적이 있다. 연구실과 숙소를 오가는 단순한 일상 중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서 정류장에 나가는 것이었다. 한 번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막차를 놓치면 정말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하지만, 운 좋게도, 미국 친구가 자기가 새 차를 뽑아서 예전에 타던 자동차가 놀고 있으니, 한 달 동안 그 차를 쓰라고 했다. 너무 오래된 차라서 문도 반드시 열쇠로만 따야 하고, 차에서 내려서 문을 닫기 위해서는 꼭지 같은 것을 안쪽에서 누르고 닫아야 하는 구식이었다. 하지만 이 차 덕분에 밤에도 셔틀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늦게 숙소로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빵과 우유 같은 것들을 사서 자동차로 돌아와 문을 열려고 열쇠를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열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운전석의 창문을 통해서 차 안에 그대로 꽂혀있는 자동차 열쇠가 내 눈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문의 꼭지도 잠김 상태로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고리를 잡아당겼지만, 문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쇼핑몰 경비원이 자동차 문을 따주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전화번호를 몇 개 줬다. 다들 너무 늦어서 갈 수 없다고 했는데, 마지막 한 명이 가는 방향이니 들리겠다고 했다. 이미 주변은 깜깜했고, 문을 닫은 쇼핑몰의 거대한 주차장에는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강도를 만나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세 시간처럼 느껴진 삼십 분이 지난 후에, 드디어 차 한 대가 나타났다. 혹시 총을 꺼내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사람은 차문을 열 때 쓰는 긴 쇠꼬챙이를 꺼냈다. 그런데 바로 운전석 문을 따지 않고, 조수석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조금 고민하던 그 사람이 솔직하게 말해주겠다고 했다. 차 문 안 닫혔다고. 그러면서 조수석 문고리를 잡고 바로 문을 여는 것이었다. 내가 조수석 쪽의 꼭지는 잠그지 않고 내렸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창피함이 몰려왔다. 운전석의 닫힌 문만 보고, 그 난리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열려있는 문은 보지 못하고 닫혀 있는 문만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문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있는 다른 문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헬렌 켈러가 했던 이 말이 마음에 와닿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중에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환하게 열려있던 행복의 다른 쪽 문을 당시에는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행복이라는 자동차에 오를 수 있는 문은 운전석 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조수석 문도 있는데, 우리는 닫힌 운전석 문만 바라보다가 좌절하기도 한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문고리를 잡고 힘껏 당겨야 한다. 닫혀있는 행복의 문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아름다운 모습이 애처로움으로 변하는 것은 닫힌 문이 미동도 하지 않을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더 가까이 가서, 문고리를 더 꽉 잡고, 남은 힘을 다해 문을 당긴다. 하지만 문제는 문 앞으로 가까이 갈수록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닫혀있는 문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열리지 않는 문을 계속 잡아당기기만 하면 힘은 점점 더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가끔은 문고리를 놓고 닫힌 문에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금 더 뒤로 가면 이미 열려있는 행복의 다른 쪽 문을 발견하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 문고리를 놓고 쉬는 동안 우리는 다시 문을 열어 젖힐 수 있는 힘을 모을 수 있고, 문을 열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도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가장 성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가끔은 일상으로부터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고 쉴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주는 것은 성실성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을 주고, 동시에 행복의 다른 문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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