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규 건축사 충남건축사회 부회장
한민규 건축사 충남건축사회 부회장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가로 기억된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건축의 대가이신 교수님(지금은 작고 하셨지만)과 여러 명이 경주로 갈 기회가 있어서 동행을 하게 됐다. 늦은 밤 리무진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경주로 향한 여행은 다른 여행이나 출장과 달리 여행에 대한 구체적 목적을 띄지 않아 마음부터 편안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번 경주행은 내 생애 두 번째로, 첫 번째는 2002년경 신혼 여행길에 들렸던 곳 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둘러 본 것으로 기억된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사진으로만 보던 불국사내에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 대웅전의 거리를 직접 가늠해 볼 수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사진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긴장감과 거리를 느낄 수 있었다. 경주 하면 바로 떠올리는 것은 석불사(석굴암)와 불국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주 여행의 가장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두 곳은 우선 `신비로움`이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우리에게 아주 흔하게 알려져 있으면서도 막상 구체적으로 시작하면 그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배경, 동기등 조금씩 더 깊은 의문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오전 6시경에 가장 먼저 간 곳은 석굴암(石窟庵)이라 알려져 있는 석불사(石佛寺). 하늘에 구름이 끼어 일출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비록 간밤에 잠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어도…중·고등학교 또 건축을 전공하고 듣고 배웠던 석불사를 그 이후에는 별 관심도 없이 지내왔다. 피상적으로 남들이 좋다, 훌륭하다,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건설된 지 천 몇 백 년이 됐다. 하는 정도로 이해해 온 정도다. 그런데, 아침에 도착한 석불사에서 깨닫게 된 것은(이것도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깨달은 거지만) 이제껏 건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석불사가 위치한 장소가 어떤 곳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저 생각해왔던 것은 토함산에 건설된 석불사였던 것이다.

김대성의 창건실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현세의 부모님을 위하여 토함산에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님을 위하여 석불사를 세웠다` 하는 이야기는 제쳐두고라도 불국사, 석불사, 그리고 동해로의 관계는 뭔가 말로 설명하지 못해도 석불사 앞에서 장소성만 생각해도 어떤 수리적 힘이 느껴지는 것 같다. 첫 번째 갔을 때는 석굴의 본존불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주위에 있는 10대 제자상의 부조들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보호 각에 가려져 전부 본 것은 아니지만, 부조 하나 하나가 육체, 태도, 몸짓 등이 다르다. 10대 제자상의 시선은한 곳으로 향하여 다양성 중에 통일감이 엿보인다. 교수님이 안내 한 곳은 석굴 사원을 나와 좌측으로 올라 간 곳에 있는 석탑이 있는 곳인데 그 석탑이 천 몇 백 년 동안 그 곳에 있었다니 새삼 경의를 표현하고 싶다. 이 석탑은 일반인들이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으로서 혹시 이 글을 읽고 무리하게 행동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바란다.

혹자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자금성, 인도의 타지마할 같은 유물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이 초라하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석불사(석굴암)는 규모와 비교 할 만한 대상이 아니며, 그 속에는 종교와 과학과 예술이 하나 됨을 이루는 최고의 미가 이루어져 있다. 본존불 앞에서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석굴에 감도는 신비롭고 장엄한 기운을 느끼면서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 가지 아쉬움 점은 석굴 사원을 해체 복원하는 중에 나온 부재들을 다시 설치하지 못 하고 부재의 이름을 단 푯말(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만 설치한 채 방치해두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문화유산을 대하면서 너무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스토리텔링이나 배경 등을 미리 숙지하고 문화유산을 대하면 우리의 문화유산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모습들을 보여 줄 것이다. 가급적 관람객이 붐비지 않은 시간을 택해 그 공간을 느끼면서 대상물을 보면 더욱 더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 올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민규 건축사(충남건축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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