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개봉 15일 만에 관객 수 1000만 명, 총 누적 관객 수 1600만 명, 제작비의 14배를 넘는 매출액 순위 1위. 2019년 개봉한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이 가진 역대급 기록이다. 영화 `극한직업`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극한 환경에서 국제 마약조직을 검거하는 마약단속반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려 대박을 터뜨렸다. 동일한 제목의 TV 다큐멘터리 `극한직업`은 극한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삶을 밀착 촬영하여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평범한 `일상`을 넘어서는 `극한`의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과 경외심을 자극한다. 수학에서 `극한`은 함수의 값이 어떠한 값으로 가까워지거나, 또는 점점 멀어지는 움직임을 나타내며 미적분학의 핵심 개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극한`은 궁극의 한계, 사물이 진행하여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단계나 지점을 이른다고 정의하고 있다.

`극한`은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의 호기심과 연구의 대상이었다. 과학기술의 수준이 어느 정도 평준화된 현대에는 극한의 첨단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극한의 첨단기술은 초격차를 낳고, 누가 먼저 확보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먹거리와 품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상의 `극한환경`에 대비해 매우 까다로운 기술을 진보시키고 있는 대표적 분야가 원자력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원자력기술은 안전을 위해 늘 `극한환경`과 씨름하고 있다. 원자력의 대표적인 `극한환경`은 `설계기준사고`다. `설계기준사고`는 발전소의 계통, 기기 및 구조물의 설계기준이 되는 사고로서, 핵연료의 손상이나 방사성물질의 누출을 제한치 이내로 유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악의 사건을 통칭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자동차가 주행 중에 타이어가 터지는 사고를 예를 들어보자. 4개의 타이어 중에 한 개부터 네 개까지 동시에 터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수학적으로 경우의 수를 모두 조합하면 총 15가지가 된다. 이 중 탑승자의 안전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지는 타이어 네 개가 동시에 터지는 극한의 경우가 `설계기준사고`에 해당한다.

원전을 설계할 때 고려하는 `설계기준사고`는 원전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0개 내외로 분류된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냉각재상실사고(LOCA)를 살펴보자. 냉각재는 열에너지를 방출하는 핵연료를 냉각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마치 피와 같아서 순환 회로 속에서 상실되면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핵연료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제거하지 못하고 온도가 계속 상승해 핵연료가 녹아버리는 중대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차냉각재계통의 냉각수가 상실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원전 안전의 핵심이다. 냉각재가 상실될 수 있는 수학적인 경우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자동차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가장 심각한 상황을 가정하여 직경 1m, 두께 10㎝에 이르는 대형 배관이 칼로 무 자르듯 한순간에 두 동강나는 극한의 경우를 설계기준사고로 정한다. 비록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더라도 말이다.

원전은 이러한 비현실적인, 다양한 극한의 `설계기준사고`에 대비하며 어떤 경우에서도 안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공학적으로 보면 원전은 이미 넉넉한 안전 여유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기대하는 안전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원자력 전문가들은 궁극의 안전을 위해 오늘도 `극한기술`을 진보시키고 있다. 이들이 진정한 `극한직업`의 종사자들이 아닐까?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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