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11월 7일, 입동인 주말에 제법 차가운 비가 내렸다. 빗방울에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20도를 넘나들던 기온이 갑자기 하강하고, 아침저녁으로 찬 날씨가 이어져 자기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면서 괜스레 쓸쓸한 감정이 든다. "아! 쌀쌀하니까 쓸쓸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쓸쓸하다`의 어원은 큰 거문고 슬(瑟)을 두 개 붙인 `슬슬(瑟瑟)하다`라고 한다. `쓰윽-쓱`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거문고나 비파 같은 악기의 소리가 낙엽을 밟는 서걱서걱한 소리와도 비슷하다. 입추에서 입동까지의 가을바람은 슬픈 바람, `비풍(悲風)`이라는 이름도 얻었는데 이를 보면 한 해가 저문다는 아쉬움과 비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런 기후 변화나 일조량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 고금이 다르지 않았다. 2세기경부터 로마 의사들은 우울증이 겨울 동안 빛 부족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울증이 오고 기력이 저하되면 햇빛을 눈에 비추는 치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일부 질환은 특정 계절에 집중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특히 반복적인 우울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장기간에 걸쳐 추적해보니 우울은 가을·겨울에 걸쳐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84년 Rosensthal 등이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이하 SAD)`를 기술하면서 설문연구가 시작됐는데, 그중 젊은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겨울형 SAD가 높은 유병률을 보였다.

한의학에서도 이러한 감정의 변화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설명한 부분이 있다. 노즉기상(怒則氣上), 희즉기완(喜則氣緩), 비즉기소(悲則氣消), 공즉기하(恐則氣下), 사즉기결(思則氣結), 경즉기란(驚則氣亂), 우즉기침(憂則氣沈) 이라고 하여 여러 심리적 감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기운의 순환을 어지럽힌다고 보았다. 특히 가을은 비즉기소(悲則氣消), 사즉기결(思則氣結), 우즉기침(憂則氣沈)이 일어나기 쉬운 상태다. 즉, 슬픈 생각으로 상심이 많아지면 기운이 삭아버리고, 생각이 많아져 고민하면 기운이 맺히고, 우울한 생각으로 기운이 가라앉아 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SAD는 일반적인 우울증과 차이가 있는데, 수면 욕구 증가, 식욕 항진, 체중 증가와 같이 우울증과 반대되는 비전형적인 증상을 특징으로 가진다는 점이다. 2008-2013년 한국인 552명을 대상으로 한 SAD 연구에서도 일조량과 습도가 기분과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고, 계절성과 관련되어 가장 많이 보고된 증상은 `에너지 수준의 변화`라고 한다. 더욱이 가을과 겨울의 SAD를 겪는 사람들은 자주 탄수화물을 갈망하게 되며 덜 운동하게 되고, 이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여 대사증후군이나 대사 이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3배 정도 증가시키기도 한다. 코로나19 이슈로 운동량이 줄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지 못해 대사증후군 위험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니 악순환인 셈이다.

코로나19가 슬픔, 건강 문제 및 재정적인 어려움을 포함해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기 때문에 고립되었다는 느낌, 외로움이 발생하기 쉬워 이런 우울함은 쉽게 떨치기가 쉽지 않다. 생활 방식의 지속적인 변화, 업무 증가, 가족 스트레스 요인, 사회적 상호 작용 감소로 인해 이번 겨울에 SAD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아침에는 햇볕을 쬐어 즐거운 기분으로 우울을 떨치고, 주 2회 친구들과의 대화로 SAD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원리를 희승비우(喜勝悲憂)라고 하여, 즐거운 기분이 비애와 우울감을 이긴다고 설명한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잘 만나지 못하더라도 전화나 줌 등의 영상채팅을 통해 심신을 안정시키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계절적으로 우울감을 느끼더라도, 이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이슈도 마찬가지다. 추운 겨울 뒤, 봄이 오고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이, 코로나19 백신접종율 77.4%(11월 11일 기준)를 기록하며 `위드 코로나` 점진적 회복의 시간으로 변화해 가는 것이다. 터널 끝에는 항상 빛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번 겨울을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윤지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약데이터부 선임연구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