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2009년 오만원권 지폐 발행 전까지는 1만 원 권 지폐가 최고액권이었다. 만 원권 지폐의 앞면에는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뒷면에는 태종 때 온 하늘의 천문도를 돌에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 천문관측기기인 혼천의와 함께 영천 보현산천문대 1.8m 망원경이 있다. 고액권 지폐에 그 나라 과학의 상징과 한반도 최대의 망원경이 있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에게 큰 자랑거리이고 자부심이다.

하지만 1만 원 신권이 등장한 2007년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세계 최대인 8-10m 망원경을 사용하는 중이고, 10년 후에는 25m 이상 망원경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1.8m가 자랑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초라하다. 요즘은 망원경 크기만 커질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 간 융합이 일어난다. 천문학과 물리학 융합의 대표적인 예가 중력파이다. 별 성과 없이 100여 년간 예산만 쓰던 중력파 검출기로 2015년 9월 14일 두 블랙홀의 병합에서 나온 중력파를 최초로 검출했고 201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또 도전을 시도하는 천문학-물리학 융합분야에 중성미자(neutrino) 검출기가 있다. 한국중성미자천문대(Korean Neutrino Observatory, KNO)를 대구 부근 산 밑에 건설하는 것이 목표다. 중성미자란 뭘까? 자연과 물질의 근원을 궁금해한 인류는 두 가지 방향으로 탐구를 했다. 하나는 쪼개고 또 쪼개서 만물의 기본이 되는 구성 원소를 연구하는 입자물리학이고 또 하나는 더 큰 천체, 궁극적으로 우주 전체를 관측하고 연구하는 천문학이다. 입자물리학은 물질의 기본 입자에 관해 많은 것을 밝혔고 이것을 표준모형이라고 한다. 표준모형에 성과가 많지만 아직 한계가 있는데, 예를 들어 표준모형은 기본 입자의 질량이 0이라고 예측했지만, 일본의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가 기본 입자 중 하나인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음을 밝혀내 2015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중성미자는 태양의 핵에서도 나오는데 초당 1000억 개가 엄지손톱 크기의 면적을 지나간다. 숫자는 이렇게 많아도 대부분은 물질과 반응하지 않고 통과한다. 하루 동안 중성미자 검출기를 지나가는 3천 경 개(3 뒤에 0이 19개)의 태양 중성미자 중 16개 정도만 검출할 수 있다. 가지타 교수의 지도교수였던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는 1987년에 카미오칸데-II 중성미자 검출기로 초신성 1987A에서 나온 11개의 중성미자를 검출해 200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망원경 거울의 지름을 크게 하면 더 멀리 볼 수 있듯이 중성미자 검출기의 부피를 키우면 더 먼 우주를 볼 수 있다.

입자물리학은 도쿄 인근의 가속기가 쏘는 인공 중성미자로 연구한다. 그 송출방향이 300㎞ 거리의 하이퍼-카미오칸데 검출기쪽인데, 검출기는 송출방향과 2.5도 각도를 이룬다. 바로 그 송출방향 1100㎞ 거리에 대구 비슬산(또는 영천 보현산)이 있는데 거리가 멀어서 중성미자 변환을 보기에 더 좋고, 송출방향과의 각도 역시 1.3°로 더 작다. 우주방사선이 대기에서 만드는 중성미자 잡음을 없애기 위해 1000m 정도의 화강암 산 아래에 검출기를 둬야 하는데 두 산 모두 높이가 천m보다 높아 일본 산(650m)보다 우주 관측에 유리하다. 하이퍼-카미오칸데 검출기 설치 예정지는 터널을 뚫으면서 카드뮴 제거에 막대한 비용을 써야 하지만 우리나라 산은 청정해서 공사비가 훨씬 저렴하다. 기선이 길어서 세기가 약해질 수 있지만 절약되는 공사비로 검출기 용량을 키우면 우주 관측에는 훨씬 유리해진다. 우리 땅속에 우주관측용 세계최대 지하연구시설 설치 도전이 성공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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