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지만 희망고문 판명
대국민 사과와 입장 밝혀야
대선 공약 또 써먹으면 안돼

은현탁 논설실장
은현탁 논설실장
2차 공공기관 이전만큼 대전과 충남의 지역민들을 화나게 하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문재인 정권 내내 공수표를 날리고 뜸만 잔뜩 들이다가 끝날 판이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으면 단념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는데 결국 희망고문으로 판명이 났다.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이런 막무가내식 거짓말을 일삼아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 관계자들이 언급한 말들을 되새기면 기가 찰 노릇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26일 대한민국 균형발전박람회 축사에서 "우리 정부에서 준비를 잘해놓아야 다음 정부에서 차질 없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자체 의견을 모아 공공기관 이전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권 내내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할 것처럼 우려먹다가 이제 와서 `다음 정부`를 언급하는지 모르겠다.

김 총리는 지난 9월 말 지방민방과의 인터뷰에서 수도권에 400군데 공공기관이 남아있고 그중에 100명 이상 근무하는 150곳을 지방에 적절히 배치할 것처럼 말했다. 총리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불과 한 달 만에 자신이 한 말을 이리 쉽게 뒤집어도 되나 싶다. 2차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은 이미 지난해 국가균형발전위의 손을 떠나 청와대에 보고가 된 상태다.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난 9월 청와대 지역기자단 간담회에서 "사실 청와대에 보고했다. 4.7 보궐선거 전후 적절한 시기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신중 모드"라며 "국민 여론을 수렴해 정무적으로 판단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라면 이미 교통정리가 된 일인데 또다시 무슨 의견을 모으겠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현 정부는 줄곧 2차 공공기관 이전을 발표할 것처럼 했다가 문 대통령의 임기를 6개월 남겨두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도 공식적인 발표가 아니고 총리가 박람회 행사장 축사를 통해 흘린 말이다.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 "다음 정부에서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총리의 표현은 어이가 없다. 다음 행정부의 수반이 누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다음 정부` 운운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면 공공기관 이전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정책이 바뀌었다면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라 명확하게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마땅하다. 총리와 균형발전위원장은 공식 기자회견이나 브리핑을 통해 어떠한 이유로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할 수 없는지 밝혀야 한다.

전국의 혁신도시는 현 정부 내내 목이 빠져라 공공기관 이전 발표를 기다렸다. 1차 공공기관 이전에서 소외된 대전과 충남의 갈증은 더욱 심하다. 대전과 충남은 세종시 건설을 이유로 공공기관 이전을 전제로 하는 혁신도시 건설 대상에서 오랜 시간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뒤늦게 혁신도시로 지정됐지만 1년 동안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다. 지방 이전이 예고된 수도권 공공기관이 전무하다 보니 무늬만 혁신도시인 꼴이 됐다. 이러니 현 정권의 국가균형발전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만 균형발전을 외쳤지 결과적으로는 지방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들의 주장처럼 공공기관 이전 정책만큼은 현 정부의 직무유기가 명확하다. 이런 가운데 20대 대선이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집권 여당이 이번 대선 공약으로 또다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들고 나올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늑대소년의 외침에 속아 넘어갈 국민은 없을 것 같다. 은현탁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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