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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가을, 죽음을 생각하다

2021-11-04 기사
편집 2021-11-04 07: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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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강대원 신부·대전교구 천주교 홍보국장
짙어가는 가을, 우리의 '죽음'을 생각해 본다.

대자연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우리의 바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계절이다. 제 나름대로의 마지막 모습, 혹은 짙은 존재감을 한 번 더 뽐내며 이 계절에 맞는 자신만의 멋진 옷 맵시를 드러내는 참으로 멋진 계절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1월을 '죽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는 달'이라는 '위령성월'이라 해 내가,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그 누군가의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이들까지 기억하며 기도하는 달로 명명했다. 또한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죽음까지도 기억하게 만들기도 한다.

위령성월의 첫 날, 11월 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이라고 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루 전날 저녁(유대전통 안에서 해가 지면 다음 날이 시작된다는 개념이 있었는데 그리스도교 전통으로 이어짐) 이 큰 축제를 시작한다. 이 축제를 두고 핼러윈이라고 하는데, 이 문화가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이 날은 특이한 복장을 하고 파티를 하는 날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있는 '거룩한 사람들(성인)'을 기억하는 날임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하늘의 '성인'들처럼 되기 위하여 정진할 것을 기억하고 다짐하는 날이다. 위령성월의 둘째 날인 11월 2일은 '위령의 날'로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날로 지정했다. 혹시나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성인'이 되기를 기도하는 날이다.

죽은 이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고인과의 행복한 시간들을 많이 떠올릴 수도 있고, 그와 반대의 생각들이 지배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좋았던 기억이 많았다면 너무도 기쁘게 고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기억이 많은 이들은 기도를 통해 고인과 화해함과 동시에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 그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우리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 안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좀 피해야 할 부분으로 인식돼 왔다. 무덤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과 먼 곳에 자리해야 하며 장례식이 있을 때 아이들을 데려가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인식 또한 있다.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와 가까이 있지 않기를 바라는 생각 속에서 형성된 문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와 멀리 떨어져 지낼 수 있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사건사고들, 지인들의 갑작스러운 소식들. 죽음이라는 것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이다. 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로 바꿔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 나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며 질문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잘 사랑하며 살 것인가를 숙고하게 만들고 실천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선물을 얼마나 잘 활용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묻게 하는 질문이며 얼마나 더 행복하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죽음은 멀리 놓고 살아갈 문제가 아닌 내 삶 곁에 놓고 살아가야 할 질문이다. 죽음을 통해 지금의 내 삶을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숙제인 것이다. 강대원 신부·천주교 대전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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