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혹시라도 미국 드라마나 뉴스를 보다가 `Drinking the Kool-aid` 라는 관용구를 들어본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쿨에이드를 마시다` 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판매가 시작된 쿨에이드는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음료 분말이다. 음료 분말은 적당한 양으로 물에 타서 먹는다. 포도, 오렌지, 체리맛과 같은 다양한 맛이 구비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워낙 오래되고 유명한 브랜드여서 인지도도 매우 높다. 마치 우리가 휴대용 가스버너나 콘 아이스크림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상품이 있듯이 쿨에이드는 분말형 쥬스 제품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 Drinking the Kool-aid 라는 표현은 과연 무슨 뜻일까? 이 표현은 주로 정치적,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맹신하는 상황을 이야기할 때 많이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분말 쥬스 제품이 왜 이런 표현에 사용되게 됐을까?

이 이야기는 1978년 11월 남미의 `기아나 공화국`의 존스타운에서 벌어진 희대의 집단 자살 사건에서 시작된다. 사이비 종교 교주였던 짐 존스는 미국에서 사람들을 모아 활동하던 중 정부의 조사 활동이 시작되자 추종자들을 데리고 남미의 한 작은 국가로 이동하게 된다. 미의회 민주당 의원이었던 레오 라이언은 일행과 함께 짐 존스의 사이비 종교시설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짐 존스 추종자들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짐 존스는 중대한 위기임을 깨닫고 자신의 추종자들을 한 건물로 모이게 한 후 청산가리가 들어 있는 쥬스를 마시게 하고 자신들의 죽음을 `혁명적 자살`로 포장했다. 이 결과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사망했다. 이러한 집단 자살이 가능했던 것은 이들이 평소에 분말 쥬스를 이용해서 꾸준히 연습을 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청산가리를 탄 쥬스를 쿨에이드로 소개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분말형 쥬스 제품은 쿨에이드가 아닌 저가형 유사 제품이었다. 하지만 워낙 분말형 쥬스 제품으로 인지도가 높았던 쿨에이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이비 집단의 비극적 결말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쿨에이드로선 억울할 따름이다. 잘못된 정보로 만들어진 표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정정된 표현을 쓰기를 권하지만 워낙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표현이라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 이후로 Drinking the Kool-aid라는 표현은 앞뒤 가리지 않고 특정 생각을 믿고 따르는 상황에 적용되고 있다. 우리는 이 표현과 매우 유사한 일들을 겪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이 시작됐을 때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무수한 이야기들이 돌고 돌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은 사실을 맹신하고 그것을 주변에 전파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짜뉴스로 인해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으나, 아직도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며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의 심리와도 연결된다. 최근에는 인터넷 매체가 이용자의 관심사에 맞춰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생기는 필터 버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맹신의 오류를 극복하려면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와 전문가 의견에 대한 존중이 절실히 필요하다.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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