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욱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공공기반연구본부장
황동욱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공공기반연구본부장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신중하지 않은 행동이나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학생의 행태를 비판할 때 아메바에 비유하는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 아메바는 단핵세포 생물로, 아주 단순한 행동 또는 깊은 사고를 하지 않는 것을 뜻할 때 비유되곤 한다. 생물학에 무지했던 필자는 아메바라는 생명체는 아주 원초적인 생명체로, 아메바 간의 상호작용, 또는 이를 기반으로 한 집단행동은 불가능하다고 상상했었다. 이후에, 복잡계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참석했던 한 세미나에서 알게 된 아메바는 상상했던, 원시적인 생명체가 아니었다.

먹이가 충분한 상태에서 아메바는 주변에 널려있는 먹이를 먹으면서 돌아다닌다. 먹이가 부족해지면 아메바들 사이에 신호전달 물질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여러 개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듯 모여들고, 달팽이와 비슷한 다세포 구조체를 형성한다. 다세포 구조체는 하나의 개체처럼 이동을 하며 먹이를 섭취한다. 최종적으로는 구조체가 몸을 식물의 줄기처럼 만들고, 그 끝을 열매처럼 만들어 포자를 형성하는 자실체를 이루게 된다. 주변에 먹이가 충분해지면, 포자가 터지면서 아메바들의 개체가 사방으로 흩어져 먹이를 섭취하는 과정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과정에 주변상황을 인지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지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 상황이 이러하니 `모두 모여라`, 또는 `먹이가 너무 없으니 너는 줄기가 되고 너는 포자가 되어라`와 같은 명령 없이, 세포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러한 현상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단핵세포 생명체의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복잡하면서, 생명체의 생명유지를 위해 최적화된 행동을 수행한다. 아메바를 단순한 행동만 하는 생명체로 비유하기에는 너무나 고차원적인 행동양식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라 한다. 자기조직화는 생명현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군집을 이루는 개별 개체의 특성에 의해 특정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것이다. 새나 물고기가 떼지어 이동하는 현상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군집을 이루는 벌, 개미 등의 사회활동도 자기조직화 이론을 통해 연구되고 있다.

우리의 사회는 대부분 지휘자를 갖는 형태의 조직이 대부분이다. 국가, 정부, 기업 등 다수의 조직이 그 조직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세분화된 조직이 지휘자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드물게 인간사회 안에서 자기조직화되는 현상을 발견하기도 한다. 특히 재난과 같은 시급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조직이 그런 예이다. 이는 인간이 생명체로서 갖고 있는 본능일 것이다.

경영학에서는 이러한 자기조직화되는 생명현상으로부터, 기업·조직의 능동적 대응에 대한 연구가 수행되기도 한다. 일본의 `쿄세라`는 아메바 경영이라고 하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보다 유연한 조직운영을 위해 자발적인 조직구조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론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직원들에게 경영 참여를 유도하고, 이익을 투명하게 나눔으로서 자발적인 조직구조 변화와 기업의 혁신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수 밀리미터크기의 작은 생명체지만,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때론 인간사회의 혁신과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아이디어로 성장하기도 한다. 황동욱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공공기반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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