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지금 한반도에서는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남쪽에서는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의 입구"가 될 수 있다고 들떠 있는 반면, 북쪽에서는 극초음속미사일과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등을 발사하며 긴장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금년 들어 북한은 일곱 차례의 미사일 발사로 남측의 대화요구에 `화답`했다.

불과 3년 전인 2018년 8월만 하더라도 당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4차례나 들락거리며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의 후속조치에 공을 들였다. 그런데 정작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의 육성 발언을 인용해, "CVID(완전·검증가능·불가역적 비핵화)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만 요구하고, "합의된 종전선언도 멀리 뒤로 미루어 두려" 한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분명한 것은 당시 북한이 미국에게 종전선언을 요구하며 매달렸다는 점이다.

임기말에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한반도를 넘어 평화를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될 것"이라며 "종전선언"을 주장했다. 이틀 후(24일), 북한 외무성은 "종전선언 채택이 시기상조"이며,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우선"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불과 7시간 뒤, 김정은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김여정이 등장해, "종전선언은 흥미로운 제안"이라며 태도를 돌변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종전선언이 되려면 상호 존중, 편견과 적대시 정책 철폐, 불공정한 이중기준 철회 같은 "선결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에 대해 주유엔 북한대사는 "우리를 겨냥한 합동 군사연습과 각종 전략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며 친절한 해설을 곁들여 주었다.

한마디로 종전선언과 관련된 입장이 3년 만에 뒤집힌 꼴이다. 일각에서는 종전선언이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그림을 그린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비핵화의 불가역적 진전과 함께 완전한 평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북한이 종전선언에 `조건`을 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을 쉽게 설명하면 남한에 약속한 미국의 핵우산 포기,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를 말한다. 단지 한·미 연합훈련이나 전략자산(항공모함, B-52H 전략폭격기 등) 전개 등의 중단 정도가 아니라, 주한미군이건 동맹관계건 간에 미국이 남한에서 완전히 손을 떼라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북한이 핵무기에 추가하여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전술유도무기, 신형 대구경조종방사포, 초대형방사포 등 신종무기 4개 세트를 선보인데 이어,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극초음속 미사일과 SLBM 개발을 본격화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이들 신종무기를 이리저리 조합해 `섞어쏘기`를 시도하면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특히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기존의 모든 미사일방어(MD)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고, SLBM은 잠수함 고유의 은밀기동으로 기습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쯤 김정은은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이 완벽하게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었다고 확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자신감이 종전선언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뒤집으며 `전세 역전`의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김정은의 충만한 자신감은 종전선언 문제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지금까지는 단지 맛보기나 예고편에 불과할 뿐이다.

세계적 정보기관·싱크탱크들은 북한의 비핵화에 비관적이다. 일례로 미국의 `글로벌 트렌드 2040`은 북한 핵문제로 한국·일본이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는 상황을 기술했다. 영국의 `글로벌 전략추세 2050`은 2050년이 돼도 북한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미 육군 미래사령부의 미래전(2030-2050년) 관련 보고서는 북한의 지속적 군사위협으로 한국이 자체 군사력 증강을 포함한 `대안적 방안`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캐나다 국방부의 `2013-2040 미래 안보환경` 보고서도 북한의 비핵화가 여전히 국제사회의 최우선 관심사로 남을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지금은 통일 대박론이나 북한 붕괴론 같은 저비용-고소득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화천대유`식 일확천금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입구가 아니라, 도중에 길을 잃어버리는 `미로`의 입구일 가능성이 더 높다.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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