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갑진건축사사무소 건축사(충남건축사회 부회장)
유병숙 갑진건축사사무소 건축사(충남건축사회 부회장)
비가 많고 기온의 급락이 심해진 10월을 보내고 있는 요즘 가을하면 떠오르는 정취는 누렇게 물들어가는 들판과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가을 풍경화를 그린다면 그 자연 안에 나지막하고 정취가 묻어나는 작은 집 한 두 채 정도는 그려지지 않을까. 내 어릴 적 살던 집은 할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개량 한옥이었다. 대문을 지나 마당을 거쳐 뜨랑에 올라서면 대청마루가 있었고 한옥의 문풍지 대신 대청마루에는 유리가 끼워진 목재 문짝이 있었다. 여름이면 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워 하늘의 은하수를 보면서 꿈을 꾸었고, 할머니가 제사용으로 사용하신다고 가을에 감을 까서 말릴라치면 지붕에 몰래 올라가 먹던 반시의 달달함으로 집이 기억된다. 뒷마당에는 돼지, 닭을 기르던 우리가 있고 화장실은 밖에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화장실 옆에 소가 있어 어찌나 무서웠던지 화장실을 한번 가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다. 집에 경사가 있을 때면 마당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그래서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화에는 아담한 집이 들어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아이들이 그리는 풍경화 안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필자가 사는 곳은 지방의 작은 소도시다. 20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주택들과 간간히 한옥도 보이고 시청 앞 광장 주변과 터미널 주변에만 몇몇 고층(그래봐야 10층 이하) 건물이 있었을 뿐이었다. 아파트도 있었는데 10층 이하의 아파트와 10층 이상의 아파트 단지 모두를 합해 10개 이내였다. 아쉬웠던 것은 그 아파트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관리한 흔적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나름의 지역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던 소도시였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작은 도시 곳곳에 1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더 이상 그 수를 헤아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아파트로 둘러싸여 이제는 회색 도시가 된 느낌이다. 지역 나름의 멋은 옛이야기가 되어가는 중이다.

우리 지역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였을까. 도심에서 주로 보여지던 고층 아파트들이 어느새인가 지방의 소도시에도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이제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웬만한 지역을 방문해도 비슷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아이들이 그리는 집이 아파트인 것이 당연한, 마치 대한민국의 주거 양식은 아파트 하나인 것처럼. 건축물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아파트는 다 많은 사람이 건축에 기여하고 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관련된 소수의 사람에게 이익을 집중하여주는 구조이다. 지역 경제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최근 젊은 세대 중 상대적 빈곤감으로 불행해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 어렵다는 아파트 청약이 되고 이후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가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상대적으로 달라지고 심지어 이로 인한 갈등으로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니 어찌 보면 이 시대의 주거양식인 아파트는 주거가 아닌 투자의 개념이 더 큰 것이 아닌가 싶다. 아파트를 분양하는 시행사의 대부분이 편리성과 더불어 입지가 좋아 얼마나 집값이 오를 수 있는지 얼마나 좋은 투자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이 시대의 아파트는 적어도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건축물로서 `집`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계시나요?` 혹은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신가요?`라는 두가지 질문 모두를 충족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적어도 집은 그 형식과 규모에 상관없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가족들에게 휴식과 위안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 차곡차곡 싸여가는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집은 단순히 건축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그런 의미 있는 곳이며, 언젠가 그리워져 돌아가고 싶은 그런 곳이어야 하는 것이다.

유병숙 갑진건축사사무소 건축사(충남건축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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