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보행자가 차도를 건널 수 있게 설치하는 시설은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으로 나뉜다. 평면적인 시설은 횡단보도가 있고, 입체적인 시설로는 육교와 지하도가 있다.

입체적인 시설의 가장 큰 장점은 보행자와 차량의 동선을 완전히 분리하여 차량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차량에 의한 인사 사고가 근본적으로 방지된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이 있고, 에스컬레이터나 장애인용 램프가 없는 경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의 이용이 어려워진다.

평면 시설인 횡단보도의 장·단점은 입체 시설과 반대이다. 횡단보도는 차량 흐름을 방해하며 예기치 못한 인사 사고의 위험이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손쉽게 도로를 건널 수 있어 노약자, 장애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보행자에게 편리하다. 보행자로서 육교와 횡단보도, 양자택일의 상황이라면 선택은 당연히 횡단보도일 것이다.

이렇듯 편리성을 따진다면 횡단보도가 우월하지만 나름대로의 불편도 있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불편은 보행 신호를 기다려 도로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횡단보도에 의해 차량 흐름도 끊기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사람의 보행 흐름도 끊기는 것이다.

걷는 속도에 보행 신호가 딱딱 맞아 떨어지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런 행운이 항상 있지는 않다. 때로는 저 멀리서 신호등을 보고, 뛰어서 이번 신호에 건널 것인가 아니면 다음 신호를 기다릴 것인가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선택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에 신속한 판단과 과감한 실행이 필요하다.

횡단보도에는 사회적 규칙을 존중하는 문화인의 질서가 담겨 있다. 이러한 존중이 없다면 횡단보도는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십 수 년 전 필자가 처음 중국 북경을 갔을 때 가이드 주의 사항 중에 횡단보도에 대한 것이 있었다. 보행 신호가 떴다고 무턱대고 혼자 건너지 말라는 것이었다. 항상 건너는 사람들이 다수 모이면 그때 함께 묻어서 건너라는 것이었다. 모든 도로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지내다 보니 거리 곳곳에서 신호등을 무시하고 위험천만하게 운전하는 차들이 많았다. 가이드의 주의 사항이 이해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신호를 무시하는 차들이 더러 있다. 도로교통법규상 노란 신호등의 의미는 `자동차가 정지선에 있거나 횡단보도가 있을 경우 정지해야 하며, 이미 교차로에 진입하고 있을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교차로를 벗어나야 한다`이다. 하지만 깜빡이는 노란 불을 보고도 오히려 속도를 높여 횡단보도를 빠르게 지나가려 하려는 차들이 많아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 그렇기에 보행 신호로 바뀌자마자 무심코 차도에 발을 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고개를 돌려 돌진하는 차가 없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안전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거리 보행 신호가 순차적으로 전환돼 매 신호 전환 마다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는 시스템 보다는 모든 보행 신호가 함께 켜져서 사거리 주변 차량이 한꺼번에 멈추는 대각선 횡단보도 시스템이 더 안전하다. 모든 방향의 차량이 동시에 멈추기 때문에 무리한 우회전 등으로 생기는 사고도 막을 수 있다. 당연히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가야 하는 보행자 편의도 커지게 된다. 안전한 도로 환경을 위해 이런 대각선 횡단보도가 좀 더 많이 설치되기를 바란다.

횡단보도에는 잠깐의 멈춤과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 조금 빨리 혹은 늦게 도착한 이들이 모두 동일 선상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려 다시 출발하는 일종의 초기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횡단보도 대기선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바쁜 시간 중에 잠시 멈추어 서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횡단보도는 일상에서 선과 선, 점과 점을 이어주는 소통을 용이하게 한다. 넓은 차도로 분리된 거리의 상권을 하나로 통합해 주고, 주민의 생활권을 확장해 준다. 원활한 차량 흐름도 중요하지만 결국 도시는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안전하고 편리한 횡단보도는 여기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다.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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