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관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부사업단장
권영관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부사업단장
인류는 탄생 이후 질병과 끊임없는 싸움을 벌여왔다. 어떤 질병을 극복하면 이내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 인류를 위협하는 양상이 반복되어왔다. 인류는 과학기술과 의학 발전을 통해 많은 질병을 이겨냈지만, `암`이라는 질병은 여전히 넘어야 할 큰 벽으로 남아있다.

국가암정보센터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인 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4%에 이른다. 또한 2020년 전체 사망자 중 27%가 암으로 사망할 정도다. 암은 알려진 것만 100여 종에 이르며, 의학적으로 다양한 치료법들이 사용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X선이나 감마선을 이용하는 방사선치료이다. 그런데 방사선치료는 암이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방사선량이 급감하여 치료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고, 정상 세포도 손상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면 구토, 설사, 탈모, 피로, 식욕 감퇴 등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소-12(C-12)의 중이온 빔을 이용하는 방법이 새로 개발되었다. 흔히 중입자치료로 알려진 이 방법은 기존 의료기술로 완치하기 어려운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어 `꿈의 암 치료`라고도 불린다.

중입자치료의 원리는 탄소 속의 중이온을 빛 속도의 70%까지 끌어올려, 초당 10억 개의 원자핵 알갱이를 몸속으로 보내 암세포만 정밀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방사선치료와 달리 브래그픽(Bragg peak)을 사용함으로써 3배 더 많은 암세포를 파괴할 수 있다. 게다가 치료 기간도 짧고 정상 세포의 손상도 줄여 부작용이 거의 없다. 중입자치료를 사용하면 5년 생존율이 30% 이하인 3대 난치암(폐암, 간암, 췌장암)의 생존율이 2배 이상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치료가 어려운 두경부암, 악성 뇌종양, 흑색종 등에도 효과가 탁월하다.

현재 일본과 독일이 중입자치료 원천 기술을 확보해 가장 앞서 있고,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등도 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중입자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은 세계적으로 10여 곳에 불과하다. 중입자치료기 구축·운영에는 많은 비용이 필요해서, 뛰어난 치료 효과에도 불구하고 확산이 더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연세암병원과 서울대병원이 각각 서울과 부산에 치료센터를 구축 중이며, 수년 내에 환자 대상 치료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대전 신동지구에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라온`이 구축 중이다. 라온에는 의생명과학 연구를 위한 빔 조사 시설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중입자치료에 사용되는 중이온 빔을 탄소-12가 아닌 헬륨-4와 같은 다른 종류의 동위원소를 이용하는 기초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희귀동위원소를 사용하면 더 큰 치료효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라온은 직접적인 암치료 시설은 아니지만, 새로운 동위원소를 이용한 암치료에 대한 기초연구는 할 수 있다. 이렇듯 과학의 힘으로 인류가 머지않아 암을 극복하는 신기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권영관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부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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