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688쪽 / 3만 3000원)

흔히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까지 히틀러와 그의 제국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겼으며, 세계인들은 나치의 치밀한 계획과 선동에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치의 선전은 치밀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았으며, 곳곳에서 그 허점이 드러났다. 과거를 딛고 새로이 건설한다는 이들의 `평화 국가` 간판을 조금만 벗기고 들어가 봐도 군사 제국의 야망과 사상 탄압, 그리고 인종 차별과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때로는 역사적 사료조차 엉터리로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업가, 외교관, 정치인, 종교인부터 전현직 군인들과 일반 시민에 유학생까지 그 시기의 독일로 앞다퉈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대부분 독일에 대한 호의를 접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 놓고 생각해 보면, 이러한 모순적인 일들이 지금도 비일비재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있고, 이를 부추기는 건 혐오와 기대 심리다. 당시 사람들의 착각은 선입견에 의해 편의대로 해석해버린 결과물임과 동시에 지극히 경제적이면서 사적인 욕망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보낼지도 모르는 비판적 시각으로부터 나치를 가려준 것은 한편으로는 선입견에 기대어 공공의 적으로 시선을 돌려주는 묵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지에 기댄 에로티시즘이기도 했다. 이런 현실은 `새로운` 국가 건설을 주창하며, `퇴폐와 에로` 문화를 일소하겠다는 나치 자신의 주장과는 심각한 괴리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학생, 정치인, 음악가, 외교관, 공산주의자, 학자, 언론인 등 여러 인사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치 시대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재연한다. 이들 모두는 역사의 `우연한` 목격자다. 대부분은 자신의 주변만을 목격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지도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좁고 짧은 시야들을 한데 모아 말 그대로 `히틀러 시대의 독일`을 펼쳐놓는다. 그 작업은 마치 CCTV를 모아 하나의 도시를 그려내는 것처럼 지루하기도 했지만, 평범한 콘텐츠에서는 결코 찾아낼 수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그 시대 사람들이 겪었을 혼란과 부조리, 감동과 비극, 사소함과 무거움이 치밀한 옴니버스 영화처럼 교차하며 천천히 드러난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마치 하나의 인과처럼 섬세하게 연결한다.이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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