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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본말전도

2021-10-07 기사
편집 2021-10-07 07:07:10
 이태민 기자
 e_taem@daej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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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취재1팀 이태민 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학교폭력에 가담해 퇴학당한 학생 선수의 최대 징계 수위를 '영구제명'에서 '10년간 선수 등록 정지'로 완화한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사고 있다. 최대 징계 수위에 해당하는 가해 내용은 강간·유사강간 등 성폭력이다. 단순 폭력은 최대 5년 동안 출전 자격이 정지되는 것으로 조정됐다.

문체부는 당초 지난 2월 '학교운동부 폭력 근절 및 스포츠 인권보호 체계 개선 방안'을 장관이 직접 발표함으로써 강한 처벌 의지를 보였다. 어쩌면 학교 뿐만 아니라 직장·군대 등 집단 내 폭력을 근절할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6월 대한체육회가 '행복추구권과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브레이크가 걸렸다. 결국 문체부는 법률검토와 부처 간 의견 조율을 거쳐 정책을 수정했다. 10년 정도면 사실상 선수 활동을 재개하기 어려우므로 충분한 효과가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강력한 처벌 규정으로 선수 육성이 어려워질 현장 상황을 고려했을 수 있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자숙 후 그라운드로 복귀하는 사이 상처를 떠안은 채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피해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 초 '학폭 미투'의 시발점이 된 프로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국제이적동의서 발급승인을 두고 배구협회와 공방을 벌인 끝에 연봉 삭감이 동반된 그리스행을 택하며 복귀 길을 열었다. 그 사이 충청권 사이버 폭력 비중은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고,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던 한 공무원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폭력이 휩쓴 자리에 남은 것은 긴 침묵과 유령처럼 맴도는 트라우마 뿐이다.

'처벌'의 형태로라도 업보를 되돌려 받는 가해자의 모습은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는 일종의 학습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단괴롭힘 예방과 피해 회복을 위한 환경을 사회 구성원 모두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달성하지 못한 채 가해자에게 관대해진 꼴이 된 문체부의 완화 조치를 보자니 '본말전도'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난다. 취재1팀 이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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