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학생 시절(1975년쯤)에 지금은 작고하신 아버님한테 보충수업비 고지서를 내민 적이 있었다.일제시대 때 고등교육을 받고 교편생활을 하셨던 선친은 고지서를 받아 보고는 고개를 가웃둥하시며 "학과후 학력이 모자란 학생들만 별도로 남게해 개인지도식으로 이해가 될 때쯤해서 집으로 보냈다"며 "보충수업을 하는데 왜 돈을 받느냐"며 생뚱맞게 항변하던 선친의 말씀이 아직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필자의 첫 직장생활은 1988년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들어간 지역 언론사였다. 당시 민주화 물결로 언론사들이 전국적으로 하나 둘생기기 시작했다.그전엔 일도일사(一道一社)정책에 따라 각 도에 한 개의 언론사만이 있었다. 우리지역에도 하나,둘 언론사가 창간되며 신문사들의 경쟁이 날로 본격화됐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묵언의 룰이 있었다. 당시는 신문사들이 문화사업들을 많이 펼치곤 했는데, 상대 경쟁사의 성격이 비슷하거나 중복되는 사업은 서로가 피했다.언제 만나서 하자고 한 적도 없었다.보이지 않는 자존심과 서로 선을 넘지 않으려는 배려 아닌 배려가 조금은 있었던거 같다.하지만 그 작은 배려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1998년 IMF를 거치며 지역 언론계 모두 본격적으로 찬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1983년부터 24년간 대전의 문화를 지탱해 오던 한밭문화제가 2006년에 문을 닫았다. 대전의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요람였고 대전의 대표적 축제였다. 이런 축제가 존립을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서로 간 배려심이 부족했었다는 점이 거론된다.`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참는다`는 말이 있었다. 서로 상대방을 인정해주지 않았는지 되씹고 싶다. 아쉽게도 지금도 대전의 문화예술 대표 축제가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또 아쉬운 건 대전의 역사가 서린 근대건축물들의 손실이다. 1928년에 건축된 대전역사와 대흥동 중앙통에 있던 한국은행 대전지점(1953년),1930년도에 지은 성산교회목사관, 중동 중앙극장(1935년), 팔작기와집 대사동별당(1942년)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면, 대전문화의 산실이 되었을텐데…
문화(Culture)는 경작하다는 의미로 반대는 자연(自然)이다.문화는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생활양식(의식주·언어·풍습·종교·학문·예술·제도 등)을 말하며, 한 명 한 명의 결이 모이고 쌓여 만들어 지는 결과물이다.
문화는 후천적으로 학습을 통해 습득되며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며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문화는 고귀하고 품격이 있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문화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하기 때문이다.아름다운 문화는 자연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아름다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회구성원들의 배려심이 필요하다. 서로 배려하는 아름다운 문화공동체는 웃어른과 선생님들을 공경하는 청소년들,경쟁사회에서의 공정한 룰,상대를 인정해 줄 줄 아는 고매한 품격을 지닌 문화예술인들로 가득 넘쳐 날 것이다. 류용태 대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