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교수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교수
며칠 전 대입수시전형 모집 마감으로 대학들이 한바탕 떠들썩했다. 대입중압감이란 까마득해진 나의 대입시절을 돌이켜도 생생히 느껴질 정도로 만만치 않다. 유독 국어 과목이 힘들게 했지만 `날개`라는 현대소설의 작가, 이상에 대한 기억은 새롭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던 주인공의 외침은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그는 천재시인이요 소설가요 수필가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경성공업고등학교 건축학과를 수석졸업하고 26세로 요절한 건축가로서의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와 20세기의 괴리를 치열하게 온몸으로 부딪힌 삶을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로 표현한 그의 문학은 전혀 진부하지 않다. 그의 작품 중 초기 연작시인 `삼차각 설계도`와 `건축 무한 육면체각` 은 특히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삼차각 설계도는 건축공간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점, 선, 면, 각을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해 1, 2, 3 이라는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해 2차원과 3차원의 공간을 설명한다. A, B, C의 알파벳은 시간을 더해 4차원을 암시하기도 한다. 삼차각과 육면체각이라는 새로운 조어를 사용해 당대 대표적인 건축물의 공간구성을 육면체가 결합하는 기하학적 모형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어느 국문학자의 문학적 해석이 없었다면 아직까지도 그의 건축 무한 육면체각은 매우 낯선 언어일 것이다. 얼마 전 국어국문학자와 미국에서 물리를 전공하는 박사과정 유학생이 공동으로 `이상 시의 4차원 시공간 설계 및 건축` 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상의 삼차각설계도의 스펙트럼을 평면상의 빛에 깊이를 더하는 3차원 확장도구로 해석하고 건축무한육면체각의 사각형은 3차원 공간을 순간적인 4차원 공간으로 확장한 것으로 해석했다.

좀 더 쉬운 수학으로 건축을 얘기해 보자. 건축에 사용되는 수학적 요소는 건축을 더 아름답고 안정되게 한다. 건축수학의 대표적인 것이 서양의 파르테논신전에 적용된 1:1.618 황금비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1:1.414 비는 황금비를 뛰어넘는 다이아몬드비, 금강비라고도 한다. 인간이 가장 아름답고 균형적으로 느끼는 이 비율은 파르테논신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에 장엄함과 숭고함을 더한다. 두 건축물의 기둥은 가운데가 두툼하고 위아래가 가늘어지도록 되는 엔타시스(배흘림) 기법이 적용돼 건축물의 당당함을 더해 준다. 불국사로 가보자. 우리 건축의 수학적 보고인 불국사의 대웅전, 석가탑, 다보탑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정삼각형으로 배치돼 있으며 세 건축물의 무게중심에 해당되는 곳에 석등이 위치한다. 석가탑과 다보탑 하단부에서 피타고라스 수학과 불국사 팔작지붕 곡선을 통해 `사이클로이드`라는 수학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은 가장 스릴 있는 제트코스터 궤도이며 매와 독수리가 먹잇감을 포획하기 위해 그리는 낙하곡선인 것이다. 지금의 건축에서 수학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여러 모양의 다각형이 빼곡히 들어차 올챙이알 같은 도형의 집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수학자 `보로노이`가 고안해낸 평면을 분할, 비정형 도형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며 현대건축의 가장 뜨거운 아이템이다. 여기에도 수학이 적용돼 건축 디자인 알고리즘이 만들어 지는데 이를 `디지털건축`이라 부른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인 대만 가오슝 아트센터는 보로노이 도형을 활용했으며 베이징올림픽 수영경기장은 보로노이 도형을 비누거품의 형태로 적용한 작품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외장은 서로 다른 모양의 4만 5000개 비정형 알루미늄 패널로 구성됐다. 로봇기술로 제작했다. 충남 서산에는 개심사라는 백제시대 사찰이 있다. 울퉁불퉁한 비정형의 기둥이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 사찰의 나무기둥은 휘어지면 휘어진 대로 자신의 역할을 하며 버티고 있다. 이 비정형의 기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싫증나게 하지도 않는다. 올 가을 단풍이 든 고색창연한 개심사 탐방은 아름다운 건축이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지금까지 개심사를 몰랐음에 머쓱해질 것이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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