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희 갤러리 숨 관장
이양희 갤러리 숨 관장
우리가 말하는 지옥은 무엇일까. 지옥은 고통스러운 현실도 현실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행복에 대한 바람도 없고 꿈 마저 잃어 버리고 결핍된 상태를 말한다.

삶의 희망만 있다면 어떤 고통도 기꺼이 감내 할 수 있고 버텨낼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은 너무나 구체적으로 단계에 맞춰 실제를 경험한 듯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그려 냈지만 천국의 묘사는 엉성하게 그려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옥은 늘 현실 세계에서 무수히도 보지만 천국은 본 바가 없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아도 가속화되는 개인주의에 `혼술`과 `혼밥`이 일상화되고, 홀로 사는 자유보다 인간이 그리워 견딜 수 없는 외로운 삶이 더 비참한 지옥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은 자유를 갈구하는 마음 만큼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해서 적절한 삶의 균형아래 자신의 유토피아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래서 "당신의 유토피아는 어디에서 안녕을 꿈꾸십니까?"라고 물으신다면 너무나 원론적이고 고리타분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늘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있다. 타인과 비교하며 꿈꾸는 행복이나 욕망은 그것들이 좌절되는 순간 힘을 잃고 스스로 무너진다. 많이 벌고 싶고, 돈도 펑펑 쓰고 싶고, 계절마다 여행도 가고 싶고, 인심도 쓰고 싶고, 큰 차도 갖고싶고... 허영기 섞인 이런 욕구를 다 채울 수 없는 고통은 결국 자신의 안에서 영혼의 풍요를 찾는 것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다.

잘난 것, 잘난 사람이 실시간으로 자랑되고 보여지고 홍보되는 세상에서 그 타인의 욕망에 춤추는 기쁨에 취하다 어느 순간 허무와 고통으로 귀결된다. 결국 자신의 구원과 자신의 유토피아는 오직 고유한 자기를 지키는 것, 오직 자신의 영혼이 꿈꾸는 욕망, 타인에 의한 타인에게 자랑하고픈 욕망이 아닌 나만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오직 나의 것. 내가 시련을 통해 배운 모든 것. 고통의 강을 건너 지나온 내 육체의 단단함.마음의 평정을 위해 싸우고 고민한 내 정신의 흔적. 하나 하나 실수와 착오를 거쳐 이루어낸 나의 평온함 안에 꿈꾸는 잔잔한 시간. 잠깐 책상 속의 서랍을 열었다 닫는 그 찰나 같은 그 순간 오직 나의 감각으로 이루어낸 모든 것. 그 삶의 지문 안에 나의 유토피아가 숨어 있다. 이양희 갤러리 숨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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