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초보은 한 백구 사연 잔잔한 여운
천인공노할 가족 간 범죄 씁쓸함 줘
코로나19로 더 절박해진 가족 의미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흰둥이, 검둥이, 누렁이 등 시골에서 흔하던 개의 이름. 아마도 이 개는 털이 하얘서 `백구`라고 지었을 것이다. 3년 전 큰 개에 물려서 사경을 헤맬 때 할머니에게 발견된 후 그의 따뜻한 보살핌에 이 개는 기운을 차렸다. 오갈 데 없는 유기견 신세라 그렇게 90을 넘긴 할머니와 가족이 됐다. 이름이 없던 이 개를 할머니 가족들은 백구라고 불렀다. 유기견에서 반려견으로 백구란 이름을 얻었다. 유독 할머니를 따랐던 백구가 국내·외 메스컴의 주목을 받은 건 이달 초. 백구의 `결초보은`을 한 사연이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사연은 이렇다. 홍성군 서부면 송촌마을에 살고 있는 치매가 있던 이 할머니가 집을 나간 뒤 실종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건 지난달 25일 새벽이다. 경찰, 방범대원, 마을주민으로 구성된 합동 수색대가 실종된 할머니를 찾아 나섰지만 계속 된 폭우 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날이 밝아 수색인원이 보강 돼 할머니 찾기는 계속됐지만 행방은 묘연했다. 하루가 지난 26일 충남경찰청은 생체온도를 탐지하는 드론까지 띄웠다. 열감지를 통해 실종자를 찾겠다는 것.

그러나 할머니의 체온이 떨어진 탓에 열감지가 안 되면서 생체신호가 잡히지 않았지만 그의 곁을 지킨 백구의 체온이 결정적이었다. 쓰러진 할머니의 몸을 비비며 오랜 시간 곁에 있던 백구의 체온이 열화상 카메라에 빨갛게 표시, 할머니를 찾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할머니가 발견된 곳은 집에서 2㎞ 떨어진 논바닥이었다. 저체온증으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는 순간에도 백구는 할머니를 걱정했을 것이다.

강영석 동물병원장은 "백구는 쓰러진 할머니의 건강이상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며 "40시간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도 지키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실종된 지 40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 3시30분경 가족의 품으로 백구와 함께 돌아왔다. 이렇게 백구는 사람을 구한 `의견`이 됐다. 누군가는 백구를 "주인을 충심으로 사랑 하는 행동 그 이상으로 사람도 하기 어려운 지극한 `효`와 같다"고 했다. 견주인 심모 씨는 "유기견이었던 백구가 3년 전 큰 개에게 물렸을 때 도움을 줬고, 그때부터 인연을 맺었다"며 "유독 어머니를 잘 따랐던 백구가 은혜를 갚은 것 같아 고맙고 가족이나 다름없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 같은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백구는 유명세를 탔다. 당장, 충남소방본부는 6일 홍성소방서에서 반려견 `백구(견령 4세)`를 전국 1호 명예119구조견으로 임명을 하고, 소방교 계급장을 수여했다. 전국에서 반려견이 명예구조견으로 인명이 된 건 백구가 처음이다. 유기견이었던 백구는 홍성군에 정식으로 동물등록도 마쳤다.

국내 언론을 비롯, 해외언론도 앞다퉈 은혜를 갚은 백구 얘기를 주목 했다. CNN, ABC, NBC 방송, 워싱턴포스트 등 해외 여럿 매체가 백구의 얘기를 한국발로 전했다. CNN은 `주인의 생명을 구한 견공이 최초 명예 구조견으로 선정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CNN은 "용감한 4살짜리 견공 백구는 개가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인 이유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흐뭇한 백구 소식을 뒤로하고 요즘, `개만도 못한 X` 뉴스를 접하다 보니 씁쓸함이 더하다. `천인공노`란 말 외에 어떠한 말로도 표현이 불가한 사건들.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9년 넘게 키워준 할머니를 살해한 10대 손자, 20개월 된 의붓딸을 학대하고 성폭행까지 한 뒤 살해한 20대 계부, 입양한 16개월 된 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일명 정인이 사건 등 불과 얼마 전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말고도 `천인공노`할 사건은 부지기수다. 이들에게 가족의 의미가 있었을까. 백구만도 못한 이들이다.

한가위가 목전이다. 코로나19로 더 절박한 가족의 의미다. 백구를 보면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는다.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