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지난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가 2003년에 제정한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연간 백만 명 정도다. 우리나라는 한 해 1만 3000명 정도, 즉 하루 평균 약 30명 이상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또한 자살은 국내 전체 사망원인 중 각종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네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자살 예방을 위해 수수방관만 한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 발생률 1위라는 불명예가 공표된 2004년부터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11년에는 자살 예방법을 제정했으며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자살예방에 관한 내용을 역대 정부들 가운데 최초로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 포함시켰다. 또한, 2018년에는 보건복지부 내에 자살예방정책과를 신설하는 등 자살예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부의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전염병 악재까지 겹친 2021년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얻고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2013년 OECD 팩트북은 경기침체, 사회통합약화, 전통적인 가족관 붕괴 등으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자살예방을 위해 우리나라의 문화와 자살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연령과 계층, 사회문화적 상황을 고려한 체계적인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자살의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정신건강문제, 경제문제, 신체건강문제 순으로 확인됐다.

1980년대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나라인 핀란드는 1987년 대규모의 심리학적 부검을 실시하는 등 세계 최초로 국가적 차원의 자살예방 프로젝트를 추진한 결과 90년대부터는 자살률이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심리 부검이란 자살 사망자의 유족과 전문가의 면담을 통해 사망에 영향을 끼쳤을 다양한 요인들을 살펴보고 고인의 삶을 통합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즉, 유가족의 면담을 통해서 자살직전 어떤 신호를 보이고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질병으로 사망했을 경우 부검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에 응용한 것을 빗댄 말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언어적, 행동적, 정서적으로 죽음에 관한 말과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자기비하의 말과 자기 가치 부정, 행동적인 면은 수면과 식사의 불규칙, 자기만의 생각에 몰두하기 같은 특징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따라서 보고, 듣고, 말하기 교육을 통해 주변에 우울과 불안으로 힘들어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말을 걸며 그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불행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자살률 예방에 가장 좋은 정부의 정책은 실업률 유지에 있다. 전년도 발표된 자살률을 살펴보면 20대(9.6%), 10대(2.7%), 60대(2.5%)에서 증가했으며, 70대(-5.6%), 80세 이상(-3.4%)에서는 소폭 감소했다. 특히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전년대비 25% 이상 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20대 여성의 노동 시장에서의 소외감, 즉 여성 실업률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20대 여성의 실업률은 지난해 7.6%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 남성보단 여성들이 주로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게 되고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업종이 서비스업이니 20대 여성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사회적 의식의 성숙도 필요하다.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아 먹고 있다는 것만으로 좋지 않은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을 버릴 수 있게 교육이 필요하며, 약물의 처방을 과에 상관없이 모든 의사 선생님이 할 수 있도록 치료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한가위가 코앞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와 이웃들에게 `별 일 없지?`, `잘 지내시죠?` 라는 간단한 안부 인사가 때로는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