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대학 시절, 한 선배로 부터 어떤 일이든지 꾸준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늘 이것저것 벌리는 일은 많지만 매조지가 약한데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먹고 싶은 것도 많다"고 툴툴대는 후배가 답답했었던 어느 날이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그나 나나 뭔 차이가 있었겠냐만, 그때만 해도 두어 살 차이는 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졌다. 그는 "누구든지 10년 동안 꾸준히 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무언가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듣기에 왠지 비난하는 것 같아 불만스런 표정으로 쳐다 봤더니 이런 말을 덧 붙였다. "그리고 10년 간 빠짐없이 일기를 쓴 사람은 이미 큰일을 해낸 사람이다". 반박하고 싶긴 했으나 딱히 틈이 보이지 않은 완결된 논리 구조를 갖춰 떨떠름하게 입맛만 다셨다. 그런데 곱씹어 생각하면 할수록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학교 동료교수님으로 부터 들은 얘기는 들을수록 놀라웠다. 다음 달 강원도 양구에서는 `장호 홍종문배 전국주니어 테니스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이 대회는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을 지낸 고 홍종문씨가 만들었는데 서울 장충동에 장호 테니스장을 건립해 서울시에 기부 채납할 정도로 성공한 기업인이자 테니스인 이다. 그는 1957년 이 대회를 처음 만들었다. 전란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던 시절인데 이후 매년 남녀 중고등학교 유망주 16명을 초청해 대회를 치르기가 올해로 65회째. 이미 `7권의 일기장이 기록되고 있는 셈이니` 거대한 역사를 이룬 것이다. 최근에 끝난 US오픈 테니스대회가 1881년에 시작했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국내에서 이보다 오래 된 대회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무엇보다도 중간에 끊어짐이 없이 꾸준히 진행한 것이 놀랍고, 일체의 비용을 받지 않고 주니어 선수를 육성했다는 것도 놀랍다. 권순우, 정현, 전미라 등 거의 모든 한국 테니스 스타가 역대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놀랍게도 이형택은 준우승밖에 하지 못했다. 홍회장이 별세한 이후에는 아내(이순옥 여사)와 3남3녀가 `장호테니스재단`을 만들어 명맥을 이었고 최근에는 재단 적립금도 대폭 늘렸다. 대회가 열리면 직계가족은 물론이고 며느리와 사위, 손자 등 온 가족이 총 출동해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 음식을 서빙하고 손님을 맞이해 지켜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하루하루는 매우 소중하고 그것을 빠짐없이 기록한다는 것은 매우 뜻 깊고 소중한 일이다. 그런데 단 한번을 건너뛴다고 해도 그로 인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다. 지나 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고 흘러 간 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스포츠 세계에서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지만 대회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가고 매해 발전해 가야 그 의의가 있다. 테니스 얘기를 한 건 한 골프대회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오픈골프대회는 1958년에 처음 열렸지만 올해 열린 대회는 63회였다. 한해 먼저 열린 장호배테니스대회 보다 숫자가 1이 아니라 2가 작다. 지난 해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최고의 골프대회 중 하나인데...참 아쉽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