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우리 주위에는 법규가 허용하는 최대한의 면적을 최소한의 투자로 만들어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만들어지는 건물들이 많이 있다. 이런 건물은 사용 승인이 나자마자 곧 건물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리고 군더더기가 붙기 시작한다. 건물의 아무 곳에나 에어컨 실외기 및 간판이 서로 경쟁하듯이 달라붙는다. 임대계약이 끝나면 에어컨 실외기 및 간판은 새 것으로 교체되기도 하고 그냥 상처 있는 구멍만 남기고 철거되기도 한다. 싸구려 재료로 호들갑스럽게 만들어진 간판들이 건물의 벽을 마구 파내고 붙여지는 동안 우리의 주변은 더 난잡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는 아직도 우리가 문화보다는 생존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서글픈 단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도시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결코 달라지는 것이 없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전이든 간에. 건물은 단독으로 서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건물이 들어서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주변과의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를 잘 살피는 것이 건축사의 임무이기도 하다. 건축주가 최소한의 효과로 최대한의 효율을 얻기 위한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건축주의 생각과 의견을 상세하게 파악해 건축주의 요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건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배려,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통해 우리는 각박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
건축사들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과연 이 건물이 누구를 위한 건물인가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프로젝트에 임한다. 건축사는 누구에게(의사인 경우에는 히포크라테스) 엄숙하게 선서를 하지 않는다. 건축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건축사는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건축사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은 자본의 배타성에 의하여 헛된 것이 되고 만다.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건축사와 건축주의 고뇌와 노력을 보여 주는 건물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1층 부분은 꼭 필요한 부분을 남겨 두고는 모두 공터로 개방해 그 건물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 땅을 지름길로 이용해 다른 곳으로 향할 수도 있고 그 건물에서 일을 하던 안 하던 잠시 휴식 또는 만남의 장소로도 이용 할 수 있다. 서류상의 소유 명의를 떠나 이 땅은 시민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공공영역의 할애가 오히려 건물의 가치를 높여준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건축사와 건축주의 사고를 고스란히 보여 주면서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건물 속에 우리들의 삶이 담기면서 그 건물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 이러한 삶을 담는 좋은 건축의 목표는 무엇일까. 당연히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면서 삶의 가치에 대한 이해이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좋은 건축이 계속 생김으로써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발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민규 건축사 충남건축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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