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오십 줄을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가을을 무척이나 탄다. 요맘때부터 몸도 마음도 싱숭생숭해진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면 시작되는 고질병이다. 일단 말수가 줄어든다. 정확한 주파수를 맞추지 않은 라디오의 지지직이 말과 말 사이에 끼어든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나타나는 잡음 때문에 쉽사리 집중할 수 없어 헤매기 시작한다. 하루종일 입을 놀려야 하는 직업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다.

스마트폰 벨 소리가 가슴 철렁하다. 혹시 모를 대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서 전화도 받지 않는다. 말수가 줄어드니 사람 만나기도 꺼려진다. 며칠 전 친구에게 느닷없이 욕을 먹었다. 저녁때 간만에 보자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마자 서운타느니, 왜 먼저 연락이 없냐느니, 항상 먼저 연락하는 건 자신이라며 육두문자를 날렸다. 핑계를 코로나로 돌리고 내려놓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질병이다.

"선생님 놀러 갈께요." "네. 그러세요." 가까운 곳에 동갑내기 제자가 산다. 자주 안부도 묻고 왕래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안절부절한다. 심장이 콩닥거린다. 외출했다고 할 걸 그랬나? 오면 어떤 말을 해야 하지? 문밖에서 선생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가을을 많이 타서 이래저래합니다" 라고 말도 못하고 바닥만 쳐다본다. 손님대접이 무례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손님을 보내고 나면 그제야 숨을 쉴 수 있다.

지지직 사이에 채워 넣으려고 미친 듯이 책을 읽는다. 어제는 두 권의 소설을 읽었다. 예스24와 교보문고 앱으로 쉴 새 없이 결제를 한다. "그놈의 책 좀 그만 봐!" 아내가 한마디 한다. 좋아하는 음악도 듣지 않는다. 시디 타이틀이 `시간 훅가는 최에 명곡 쿨 재즈`다. 여성 재즈 보컬,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할리데이, 쥴리 런던, 니나 시몬이 말을 걸어온다. 대답할 수 없어 오디오의 전원을 끈다.

천고마비니, 독서의 계절이니 하는 나의 가을은 이렇게 시작된다. 두꺼운 외투를 꺼내는 날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구에게 전화로 수다를 떨고 저녁 약속을 아침부터 기다린다. 고질병이다.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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