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
장종태 대전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 지난해 한국국학진흥원이 공개한 초간일기의 한 대목이다. 경북 예천에 살던 초간 권문해가 1582년 작성한 일기다. 이틀 뒤에는 "증손자가 아프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경북 안동의 계암 김령 이 쓴 계암일록(1609년)에도 "홍역이 아주 가까운 곳까지 퍼졌다. 역병 때문에 차례를 중단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시각각 가까이 접근해오는 전염병의 위협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전염병으로 인해 차례를 지내지 못했다는 기록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안동의 류의목은 1798년 하와일록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했으며, 풍산의 김두흠 역시 1851년 일기에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현종실록(1668년)에는 "팔도에 전염병이 크게 퍼져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데, 홍역과 천연두로 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봉제사를 최고 덕목으로 삼은 조선 시대에도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환자가 발생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명절 차례나 기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조상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명절 차례와 기제사는 청결한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는 쉽지 않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전염병이 돌 때 차례를 비롯한 집안 행사를 잠시 접은 이유는 전염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사람 간의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전염병을 막고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았다.

며칠 후면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지난해 많은 사람이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코로나19 속에서 지내는 추석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추석 연휴 기간에도 직계가족은 백신 접종 완료자를 포함해 8명까지 모일 수 있다. 국민 수용성과 피로도를 감안하고 추석 연휴를 맞아 이동과 가족 간 만남을 고려한 조치다.

하지만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7월부터 4차 유행이 본격화되고, 지난 8월 31일 전국적으로 2,000명대를 처음 기록한 이후 확진 환자 수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추석 명절을 포함한 앞으로의 3주가 소중한 일상회복으로 한 발 더 다가서느냐, 다시 물러서느냐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전은 4차 유행 이후 한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조치에 들어간 경험이 있다. 일반 시민들도 큰 불편을 겪었지만,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소상공인을 위해 정부는 재난지원금, 대출,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대전 서구 역시 재난지원금과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비롯해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임차료 지원, 확진자 방문 피해 소상공인 방역 지원, 휴·폐업 소상공인 영업 재개를 위한 시설 개선 등 각종 지원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분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코로나19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추석도 가급적 비대면, 비접촉의 명절을 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방역 당국은 다른 변수가 없다면 성인의 80% 이상이 2차 접종을 마치고, 면역이 생기는 시기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긴 어둠의 터널 저편으로 밝은 출구가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올 추석도 `마음은 가깝게 몸은 멀리`를 실천하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코로나19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 되길 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백 년 전 조상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발휘했던 지혜를 이제 우리가 발휘해야 한다. 장종태 대전 서구청장·대전구청장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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