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코로나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선선함이 느껴지는 가을이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고 수확을 앞두고 있다. 농부들이 한 해 동안 흘린 땀의 양에 따라 가을에 얻는 열매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농부들의 노력이 가을걷이로 평가되는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연구 끝에 얻는 논문 성과가 제대로 평가되어야 훌륭한 과학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면 과학자들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까? 열매의 수확량으로 농부를 평가하듯, 과학자들도 발표한 논문의 양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씨앗을 뿌렸다고 열매가 저절로 열리지 않는 것처럼, 논문을 썼다고 다 학술지에 게재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학술지 심사위원회에서 투고 논문의 가치를 엄정히 심사하여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학술지 게재 논문은 전문가들이 인정한 우수한 연구결과라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학술지의 수준에도 차이가 있다. 과학 분야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NSC(Nature, Science, Cell), 국제 학술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SCI(Science Citation Index) 학술지 등이 그 예다.

연구성과의 객관적 평가를 위해 어떤 학술지에 논문 몇 편을 발표했는지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 경우 NSC 또는 SCI 논문 편수, 게재 학술지의 피인용지수(Journal Impact Factor) 등의 정량지표를 이용한다. 비교가 용이하고 결과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여러 단점이 있다.

우선 과학의 다양한 특성을 모두 반영하기가 어렵다. 소위 `NSC`가 세계 최고의 학술지들이기는 하지만,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공히 그렇지는 않다. 예컨대 이론물리와 수학 등에서는 NSC보다 더 인정받는 학술지들이 따로 있다. 또한 학술지 피인용지수도 절대적이지 않다. 이 지수는 피인용도가 월등히 높은 몇 편의 논문에 의해 급등하기도 하며, 급등의 원인을 제공한 논문의 게재가 끝나면 원래 값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생긴다. 즉 학술지의 우수성을 오랜 기간 일관적으로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정량평가는 바람직하지 않은 연구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논문 수를 늘리고자 연구결과를 다수의 논문으로 나누어 발표하거나, 쉽고 빠르게 논문을 게재할 수 있는 주제의 연구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이로 인해 장기적인 연구, 모험적인 연구에 도전하는 과학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이런 부작용을 개선하고자 2012년 미국세포생물학회(American Society for Cell Biology) 연례대회에서 발표된 `연구평가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San Francisco Declaration on Research Assessment)`에서는 `연구 논문뿐만 아니라 다른 성과들도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료 평가(peer-review)를 통해 게재가 결정되는 논문이 평가의 핵심 요소이지만, 기초 데이터와 같은 결과물들도 중요한 성과로 포함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는 연구활동 결과물들의 가치도 함께 평가하여, 현대과학처럼 광범위하고 전문화된 체계에서 몇몇 지표만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불합리성을 개선하자는 주장이다.

필자가 재직 중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과학자의 우수성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다`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 석학들로 평가단을 구성해 발표·토론, 심층 인터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과학자들을 평가한다. 일부에서는 `동료 봐주기`식 평가로 흐를 위험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 국제적 우수 연구소 소장 등 권위자들이 그렇게 평가할 가능성은 적다. 실제로 석학들의 기준은 매우 엄격하여 세계 선도 수준이 아니면 여지없이 박한 평가가 내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피평가자들도 세계 선도 수준과 자신을 비교하고, 석학들로부터 조언을 듣는 좋은 기회가 되며, 성공하지 못한 연구는 향후 개선 방향을 함께 모색하기도 한다.

앞으로 과학자들의 성과가 적절히 평가되고 인정받아 더욱 발전하는 우리나라 과학계가 되기를 이 수확의 계절 가을에 기대한다.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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