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헌 미소가있는치과 대표원장
송선헌 미소가있는치과 대표원장
길은 소통이다. 모든 생명은 소통하여 존재한다. 우린 소통 즉 통(通)함으로 이루어진 유기물들이다. 통한다는 것은 유-무형간의 에너지가 전도(이)되어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이 교환은 너와 나 둘만이 아닌, 우리와 나 그리고 우주와 나와 연결된 것이다(一卽多 多卽一). 이 연결 고리가 잘못 통하면 고통(苦痛), 통하지 못하면 불통(不通), 먹통(freeze)이 된다. 오죽하면 정도 통해야 정분(情分)이 쌓이고, 눈도 맞아야 뜨거워진다.

카리스마(Charisma, 신이 부여한 능력)로 소통을 좌지우지 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맨투맨의 원탁회의를 쉽게 만난다.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종적인 소통은 같이 참여하는 횡적인 소통으로 넓어졌다. 강제와 강압은 구닥다리가 된 셈이다. 그러나 완벽한 제도란 없다. 너무 강력한 일인체제는 흥(興)하거나 망(亡)하거나가 분명히 갈라지기 쉬운 반면 횡적인 소통은 평등해서 좋지만 시간이 걸리고, 현재의 문제에만 집중 처방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는 여-야처럼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이 있어야 한다. 그럴수록 종적이고 횡적인 소통을 충족시키는 사회구조 그리고 시민들의 성숙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이런 성숙된 시민의 요구조건에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능력이다. 나만 또는 남 탓만이 아닌 서로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소통하는 문화는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새롭게 출발되어야 한다.

소통은 체한 곳을 뚫는다. 이런 소통은 흙길이든 바닷길이든 하늘길이든 마음길이든 통해야 소통하는 것이다. 막혀 있으면 뚫어야 통한다. 그 길이 혈관일지라도 경화(Sclerosis) 되기 전에 뚫어야 건강하듯, 모든 막힌 길은 뚫어야 한다. 또한 소통도 예방이 필요하다. 길은 소통이 잘 되도록 미리미리 정비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내다. 바른 길을 찾는 것이 삶의 멋, 그것은 소통을 위한 길, 그 길 위에만 멋들이 넘친다.

길은 약속이다. 약속도 종류가 많지만 소통의 길도 철저한 약속을 기본으로 한다. 길은 시작과 끝이 반복되는 약속이며 순(順) 또는 역(逆)방향의 길, 그 약속을 벗어나면 탈선이다. 우리는 평생 순간이라는 연속된 길속에 살고 있다. 항상 시작이고 항상 끝이다. 시작이 아닌 것도 없고 끝이 아닌 것도 없다. 늘 그렇게 시작과 끝은 한 몸, 동체(同體)다. 끊어지거나 끊을 수 없는 인연(因緣)이다. 결국 만나는 종점(終點)이고 회귀(回歸)다. 길은 그렇게 뫼비우스의 띠(Mobius strip), 돌고 도는 약속이다. 지키는 약속이 있는 길, 멋으로 가는 길이다.

가끔 길이 막힌다면 5천m를 걸어 넘나들었던 아슬아슬한 쓰촨성 차마고도(茶馬古道) 그 길 위의 생존본능, 청 고종의 칠순잔치에 갔다가 열하(熱河)를 다녀온 연암(燕巖)의 문화의 충격(Culture shock)인 일기, 카일라스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성스러움, 인도네시아에서 카누를 타고 8000㎞ 떨어진 마다가스카라까지 간 바닷길의 신비, 8C에 신라의 혜초가 평택항에서 배로 출발 오천축국(五天竺國)을 왕래한 귀의, 회심(Repent) 후 Tent maker로 일하며 2만㎞의 선교 여행을 하고 마지막 말 `예수!` 하고 순교한 사도 바울의 메타노이아(Metanoia), 별명이 최보따리이고 바닥인생이었지만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실행한 해월(海月)의 진정한 바다와 달의 길을 생각하라.

그리고 단출한 소통이 어려울 땐 비우러 옥천 향수, 비단 금빛강가 금강(錦江)의 향수(鄕愁)길, 특히 청마리를 지나 가덕리의 숲에 안긴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라.

따뜻한 배려와 품위의 그 길 위에. 활활 소통!

송선헌 미소가있는치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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