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몸과 마음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많이 본다. 발달 장애가 심한 아이와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외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여러 가지 보장구를 차고 있는 왜소한 아이에게 많은 사람의 시선이 간다. 여기까지는 넘어갈 만하다. 연세가 있어 뵈는 할머니 한 분이 엄마와 아이를 뻔히 바라보다 한마디 던진다. "아이가 힘들겠네. 말은 잘 해요? 엄마가 고생하겠네." 분명히 걱정하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아이 엄마의 얼굴이 영 불편해 보이더니 "예"라고 말끝을 흐리고는 자리를 피해 버린다. 그 짧은 시간 옆에 있던 내가 얼굴이 화끈거린다. 차라리 모르는 척 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 나쁜 의도가 아니고 진정 연민의 정으로 하는 말일 지라도 그 순간은 어머니와 아이에 대해 무례하고 위로보다는 상처가 되는 말인 것처럼 생각됐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50만 명이 훨씬 넘어 대한민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한다.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디서든 우리와 외모가 사뭇 다른 사람을 찾아볼 수 있다. 어려움을 도우려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그들을 특별하지 않게 바라보는 자세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다른 피부색과 외모에 시선이 가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소위 백의민족이 소수가 되어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피부색이나 외모가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 않을까. 그래서 피부색 혹은 인종 등의 정보는 민감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빤히 쳐다보거나 피부색과 출생지 등을 묻는 지나친 관심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서는 정중하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병이나 장애에 관한 정보도 대표적인 민감 정보다. 우리가 민감하다고 부르는 이유는 이 정보를 통해 원하지 않는 차별 혹은 불편함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정보는 함부로 누출할 수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는 이러한 정보의 보안을 규정한 법률이 있다. 굳이 법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식과 예절이라는 관점에서만 이야기 하고 싶다. 내가 가진 질병이나 장애를 숨기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 주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 여부를 묻는 데에도 에티켓이 필요하며, 이미 백신 접종이 많이 진행된 서구 사회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한참이라는 내용을 소개한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나와 사회의 안전을 위한 의도로 단순하게 묻는 질문이 대답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종교적인 신념, 혹은 원래 있던 기저질환 등으로 백신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자칫 무례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은 민감한 부분인 `질병`을 다루는 의사로서 십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진료실에서는 질병과 장애가 있는 민감정보의 당사자들의 대부분은 그 정보를 다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지 않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제 민감한 부분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인간관계에서 질병, 나이듦, 장애, 인종, 피부색 등 이런 주제를 마주하게 되면 빤히 쳐다보거나, 궁금한 것을 바로 묻지 말자. 나에게는 궁금증이 해소될지 몰라도 원치 않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 답변을 원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이며, 꼭 필요한 것일까.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더 필요한 것은 동정보다는 예의, 그리고 정중함이 아닐까.

일생을 살면서 우리는 호의가 가끔은 오해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마음의 상처가 되기도 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좋은 뜻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너무 앞서가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서 모르는 척 해주는 것도 충분히 사려 깊은 일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며, 본능을 이기는 이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력이 필요하고, 가르쳐야 하며, 습관이 돼야 한다.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한 배려와 예의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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