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666대가 피해를 입은 천안 불당동 지하주차장 화재 당시 누군가 소방시설을 차단한 사실이 드러났다. 화재 발생 직후 경보기가 울렸지만 인위적으로 스프링클러 등 소방펌프의 작동을 멈추도록 조작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소방시설이 정지됐다면 기계 결함이나 오작동으로 보기는 힘들다.

소방청이 국민의힘 박완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화재 상황을 복기하면 이렇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지난달 11일 밤 11시 8분 17초에 화재경보기가 울렸지만 어떤 영문인지 8초 만에 꺼져버렸다. 1분 후인 11시 9분 27초에 다시 화재 발생이 감지됐는데 누군가 또 설비의 주펌프와 예비펌프를 추가로 정지시켰다. 결국 최초 화재 감지 5분 후 전체 설비가 `ON`으로 정상화돼 화재 감지 9분이 지나서야 소화펌프가 가동됐다.

화재는 출장 세차 차량의 폭발로 시작돼 수백 대가 연쇄 피해를 입었다. 소방관 384명과 소방차 50여 대가 동원됐고, 주민 70여 명이 한밤중에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아파트 주민 14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 치료를 받았고, 30대 남성 1명은 온몸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아직도 일부 주민들은 당시 화재의 공포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대형 화재가 알고 보니 소방시설 임의 정지 행위에서 비롯됐다니 어처구니없다. 화재 초기에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경미한 사고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이다. 화재 사고는 화급을 다투는데 9분 후에 소화펌프가 작동되면서 대형 화재로 이어졌다. 불당동 차량 화재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 셈이다.

화재에 가장 민감해야 할 당사자인 건물 관리자들이 화재경보기 등 소방시설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일은 다반사다.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경보기를 끄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난 6월 경기도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당시에도 방재실 관계자들이 6차례나 화재경보를 꺼 화를 키웠다. 정상적인 화재 경보를 오작동으로 판단해 소방시설을 정지하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소방 법규가 실제 화재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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