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사상 최고의 걸작인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 선생, 연말 쯤이면 얼굴 복원 될 듯

2일 서산문화재단에서 조규선 대표이사가 지난 1991년 당시 김종필 총리가 안견기념관 현판으로 사용하라고 써 준 친필  글을 펼쳐보이고 있다.사진=박계교 기자
2일 서산문화재단에서 조규선 대표이사가 지난 1991년 당시 김종필 총리가 안견기념관 현판으로 사용하라고 써 준 친필 글을 펼쳐보이고 있다.사진=박계교 기자
"현재까지 안견 선생의 얼굴 등 모습이 전해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안견 선생을 현대 과학으로 복원해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신라의 솔거, 고려의 이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성으로 평가받는 현동자 안견 선생의 얼굴을 복원하는 일에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시대의 역작인 `몽유도원도(세로 38.7㎝, 가로 106.5㎝)`를 그린 안견 선생의 고향인 서산에서 안견 선생을 모시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서산문화재단(대표이사 조규선)과 안견기념사업회(회장 신응식), 조용진 한국형질문화연구원장, 박수복 해인미술관장이 뜻을 모았다. 연말 쯤이면 복원된 안견 선생의 얼굴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안견 선생의 얼굴을 복원하는 그 중심에 안견기념사업을 총괄하는 서산문화재단 조규선 대표이사가 있다. 사실, 조 대표이사를 빼놓고 안견 선생을 논할 수 없다. 조 대표이사는 1981년 안견기념사업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한때 안견 선생의 출신지 논란이 있었으나 안견 선생의 고향이 서산이라고 밝혀내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안견 선생의 출신지 논란이 일단락 된 후 1990년 안견 선생 기념비를 세우고, 1991년 안견기념관을 짓는데도 조 대표이사의 역할이 컸다.

특히 안견기념관의 현판은 조 대표이사의 요청에 따라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 총리가 친필로 써서 보내왔다. 현판은 김 총리의 필체로 안견기념관의 얼굴이 됐다.

다만, 조 대표이사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안견 선생의 `몽유도원도`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 있다는 것. 한때 반환 운동도 펼쳤지만 일본을 자극한다는 이유 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2000년대 초 몽유도원도를 실측 크기로 제작한 영인본을 받는데 만족했다. 영인본은 안견기념관에 전시 돼 있다.

조 대표이사는 안견 선생의 얼굴이 복원이 되고, 흉상 제작과 나아가 영정까지 그려 안견 선생을 영원히 기를 계획이다.

복원된 안견 선생의 얼굴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조 대표이사는 "안견 선생의 얼굴이 복원된다는 것은 안견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안견 선생의 예술혼을 기려 서산문화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어느 날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복숭아밭에서 노는 황홀한 꿈을 꾸었고, 안견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이 `몽유도원도`다. 1447(세종 29년) 4월 20일 그리기 시작, 3일 만인 23일에 완성했다. 회화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평대군의 발문부터 김종서, 신숙주, 정인지, 박팽년, 서거정, 최항, 이개, 성삼문 등 당대 문장가 21명의 찬시가 친필로 붙어있다. 박계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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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산문화재단에서 조규선 대표이사가 몽유도원도를 보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박계교 기자
2일 서산문화재단에서 조규선 대표이사가 몽유도원도를 보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박계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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