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어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오는 27일로 늦추는데 합의했다. 여야는 법안 상정을 미루는 대신 국회의원 4명과 언론계 및 전문가 4명 등 모두 8명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민주당이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하려다가 한발 물러선 셈이다. 입법 폭주를 밥 먹듯 하던 민주당이 국민 여론을 의식해 법안 처리를 멈춘 것은 다소 의외이지만 다행한 일이다.

민주당의 방향 선회는 언론중재법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당내에서도 강행론에 묻혀 있던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다가는 내년 대선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처리에 일단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여야가 민·정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하더라도 쟁점 사안에 대해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독소 조항인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허위·조작 보도와 관련된 중과실 요건, 기사열람차단 청구권 등은 사실 중간 지점이 없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전략적 후퇴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이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국민 여론 수렴을 마쳤다며 한 달 후 또다시 가속 페달을 밟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언론중재법은 당초 가짜 뉴스에 대처하기 위해 시작됐는데 정작 진짜 뉴스를 잡는 법안으로 변질됐다.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는 조항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고의 또는 중과실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모호하고 해석하기 나름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진실을 파헤치는 심층 보도, 합리적 의심에 따라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 추측에 기반한 해설성 기사 등 사실상 모든 보도가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법안이 만들어지면 현장의 취재 기자는 위축되고, 펜은 무디어질 수밖에 없다. 법정에 서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않고, 보도자료나 받아 적으며 용비어천가만 불러야 한다. 언론중재법안은 토론 과정을 거쳐야겠지만 당장 폐기 처분해야 할 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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