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원 호서대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이건원 호서대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건축에 기대하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천편일률적이던 건축물의 독특한 개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건물이 담아내야 하는 인간 활동의 종류도 더 늘어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적 요구나 트렌드 변화에 따라 건물에 요구하는 기준도 그렇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건축물 인허가를 전후로 다양한 영향평가, 인증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건축물 종류나 규모에 따라 상이하지만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환경영향평가, 교통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교통영향평가가 있고 최근 개발사업이 주변 교육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교육환경영향평가가 추가됐다. 건축물 내부나 외부공간에서 접근성이나 이동 편의성을 살펴보는 BF(Barrier Free) 인증, 공간의 범죄예방 성능을 살펴보는 CPTED(Crime Prevent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인증, 건축물 에너지 효율성 및 친환경 성능을 살펴보는 녹색건축인증(G-SEED) 등이 있다.

대부분 특정한 사건이나 이슈가 일어난 이후 건축적 대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제도들로 건축물 질이 좋아지고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에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양한 컨설팅 회사가 생겨나 영향평가나 인증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니 일자리 창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제도가 너무 많아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인증의 본래 목적과는 상이한 효과가 창출되는 경우도 있다. 상대적으로 투입 비용이 적음에도 점수를 따기 쉬운 지표를 중심으로 계획이 이뤄지는 경우가 그러하다. 특히 큰 문제는 건축사 업무와 중복되거나 건축사의 적절한 설계 대가를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사는 건축물의 기획, 설계, 준공까지 책임지는 자타공인의 건축전문가다. 그럼에도 빠르게 변화되는 사회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영향평가와 인증제도를 건축사가 모두 이해하고 설계 과정에 담아내기는 어렵다. 각 제도는 일률적으로 건축물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건축물 용도, 규모, 상황에 따라 각기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업무는 전문 컨설팅 업체에서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몇 가지 문제도 생긴다. 먼저 설계비의 상대적인 축소다. 공공에서 발주하는 공공건축물은 대부분 이러한 인증제도를 위한 컨설팅비를 설계비와 별도로 책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었고 여전히 설계비 내에서 동시에 책정되는 경우도 있다. 공공이 이러할지니 민간은 더하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인증 컨설팅 비용이나 설계 비용 모두 비용이다. 그러니 더욱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설계비에 같이 책정되어 건축사의 업무 대가가 더욱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건축물을 위한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설계에 이러한 컨설팅이 적절하게 녹아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설계가 종료된 이후에 부랴부랴 컨설팅을 받고 응급처치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존 설계의 의도를 해치는 경우도 있고 건축물 유지관리 단계에서 문제가 생겨 하자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 피해는 그대로 건축주와 건축물 사용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서두에는 보다 나아진 삶의 질, 건축물에 대해 더 높은 요구사항에 맞춰서 생겨난 제도들이라고 소개했는데 그것들 때문에 건축물에 문제가 생긴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느낄 것이다. 분명 영향평가와 인증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너무 과하고 그것들과 설계와 비용·과정·업무적 관계가 적절하게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결국 그런 것들이 우리 건축의 질을 도리어 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 본래의 제도 수립의 목적을 잘 달성하기 위해 주무부처의 노력과 건축사·건축주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이건원 호서대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