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쓰고 싶은 글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고 써야만 하는 글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박에 사로잡힌 일이다. 쓰고 싶은 글은 안 쓰면 그만이다.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고 멈출 수 있다. 그래서 몹시 자유롭다. 반면에 꼭 써야만하는 글은 예정된 시간이 있다. 마치 알람시계처럼 정해진 시간이 있고 그때까지 마쳐야 한다. 글은 안 써지고 시간은 다가오고 언젠가 알람은 울릴 테고.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래서 내 방식으로 행복해지기로 했다. 꼭 써야만 하는 글에 내가 하고 싶은 일, 생각, 주장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타협을 했다.

광복절 연휴, 달콤한 3일간의 연휴가 끝난 지난주 화요일 아침이었다. 작업실에 오면서 혐오스럽고 역겨운 현장을 지나쳤다. 둔산훼미리타운과 둔산종합시장 사이의 쉼터가 그곳이다. 공원이라고 불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름조차 없다. 구청이 관리하는 한 필지 남짓의 땅으로, 화단과 나무가 심어져 있고 벤치와 조그만 정자가 꾸며져 있다. 화단의 경계석도 때때로 보수하고 화초와 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꾸는 걸 보면 버려진 곳은 아닌게 분명하다.

사실, 이곳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번잡한 핫플레이스 중의 하나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는 언제나 만원이다. 동네 어르신들부터 행인에 이르기까지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주변에 상점과 노점상들이 여러 곳 있어 심심치 않은 곳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항상 깨끗할 수는 없다. 아침에 이곳을 지날 때면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지만 혐오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전혀 달랐다. 광복절 연휴 3일간은 잡히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이동자제를 호소했던 때였다. 3일간의 연휴 동안 무슨일이 있었는지 뻔했다. 담배 꽁초가 셀 수 없을 만큼 버려져 있고 여기저기 맥주캔과 비닐봉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20년 동안 그 쉼터를 오갔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 꼴을 어쩌지! 스마트폰에 담아 구청 게시판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우선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먼저일 만큼 더러웠다. 나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쉼터를 지나치고 말았다. 스마트폰에 그 광경을 담지 않은 것이 지금 부끄러워 이 글을 쓰고 있다. 조부연 대전도예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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