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대선 예비주자들이 출마를 선언한 뒤 공통적으로 하는 일 중 하나가 대한노인회를 찾아가는 것이다. 가장 큰 표밭인 노인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다. 지난 대선에서 60대의 투표율은 84.1%로 어떤 연령층보다도 높다. 이들에게 선거일은 모처럼 쉬는 빨간 날이 아니다.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맞더라도 노인들은 투표를 한다. 따라서 이들의 의사에 반하거나 밉보이는 정책을 펼치는 정부나 정당은 감히 없다. 그랬다간 정권을 쟁취하거나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노인에게 있어 복지는 표심을 얻는데 중요한 무기다. 이러한 복지는 비가역적(非可逆的)인 성격을 갖고 있다. 줬던 것을 다시 뺐기가 어렵다는 소리다. 받은 것보다 더 주거나 최소한 그만큼은 유지해야만 한다. 따라서 향후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복지정책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표심을 얻기 위해 무턱대고 내뱉고 보는 식의 공약은 지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약의 실현 및 지속 가능성이며 이는 결국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안정적으로 조달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토론회에서 기존의 기초연금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하자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있다. 가장 중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증세(增稅) 없는 복지란 사실 상 어려운데 세금을 더 걷지도 않겠다고 했다. 숨어 있는 지하자금을 양성화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대선주자라면 재원마련에 대해 보다 치밀하고 계획적인 대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 결국 공약이니 만큼 기초연금은 20만원으로 인상됐지만 아무리 기획재정부를 들들 볶아도 답이 안 나오니 그래서 나온 것이 국민연금과의 연계방안이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겠다는 것인데 어려워도 꾸준히 연금에 가입한 애꿎은 노인만 손해 보는 상황이 됐다. 기초연금은 "연금(pension)"이란 말만 붙었을 뿐 세금으로 운용되는 현금성 수당이다.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은 우리가 낸 세금이다. 차곡차곡 보험료를 낸 뒤 나중에 돌려받는 사회보험의 국민연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해가 지날수록 노인인구로 편입되는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이들은 백세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수급자격을 갖춘 이들이 모두 돌아가실 때까지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는 소리인데 현재도 재정조달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마당에 가능할까 싶다. 상황이 어려워 이를 중단하거나 줄이기도 여의치 않다. 한번 가동되기 시작한 복지정책을 폐기하기란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책임을 깨달고 차기 정권이 이를 폐기 또는 축소하더라도 엄청난 사회적 반대에 버틸 수가 없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책은 이어지며 무리한 복지정책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모든 피해는 국민과 사회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최근 모 대선주자가 대한노인회를 찾아가 기초연금을 50만원으로 늘리고 매년 10만 원씩 인상해 임기 마지막 해엔 월 10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인 빈곤율이 50%에 육박하는 만큼 이들을 위한 현실적인 소득보장 정책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공약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감당할 수 있고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인기를 위해, 당선을 위해 유권자에게 돈을 주고 표를 사는 것. 우리가 경계해야할 것은 포퓰리즘(populism) 공약이다. 대중영합주의식의 공약은 제대로 된 정치인이 정치에 참여할 수 없게 만들 뿐만 아니라 국가의 효율을 악화시키며 결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공약만 남은 허울뿐인 국가로 전락하게 만든다. 이런 때 일수록 우리는 공약을 올바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길러야 한다. 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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