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50일 넘게 네 자릿수다. 그나마 백신 수급이 원활해져 접종율이 높아졌다. 지난 봄 백신 접종을 앞두고 한국산 K-주사기가 화제가 됐다. 이른바 최소잔여형(Low Dead Space syinge, LDS) 주사기이다. 백신 투약 후 남는 양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스톤 구조를 개량한 LDS 주사기는 개발과 양산 과정에 정부가 선제적 지원해 `2021년 상반기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 국무총리상도 수상했다.

한 방울의 백신도 아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최소잔여형 주사기의 가치나 기능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소잔여형 주사기를 보며 문득 일 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떠 올랐다. 극미량까지 짜내 효용성을 다한 뒤 폐기되는 일회용 K-주사기가 마치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며 휴식권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소진되고 마는 K-노동자의 현실과 닮았다.

기후위기 비상시대 일상부터 변하자는 움직임이 붐이다. 재활용은 기본. 요즘은 쓸모 없거나 버려진 물건을 새로운 디자인과 발상으로 종전과 전혀 다른 제품으로 만드는 새활용도 활발하다. 만약 재활용과 새활용의 대상을 사람으로 등치하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도한 수준은 어디쯤일까.

코로나19 시대 아프면 쉬고 출산 휴가를 홍보하는 공익 캠페인이 낯설지 않지만 주변에는 아파도 쉬지 못하고, 아이를 낳고도 법적 보장된 휴가를 사용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재난 상황에서 주민의 생명과 신체 보호 및 사회기능 유지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필수노동자`라 부른다. 사회복지, 의료, 돌봄, 안전, 물류, 경비, 청소, 플랫폼노동 등에서 대면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짧게 쓰자면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쉬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쉬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조신호를 끊임없이 발신하지만 사회 복판에 가 닿지 못한다. `일잘러`와 `갈아 넣는다`가 상존하는 한국사회에서 공공의료 강화와 인력 확충을 요구하는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결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개인의 생활세계는 노동하지 않는 시간에 만들어진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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