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한증막 같은 열대야에 에어컨이 고장 났다.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몇 차례 전원을 껐다 켜보아도, 덥고 습한 공기만 되돌려 토해낼 뿐이다. 실내온도 30도. 급히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해보지만, 예약 가능한 일정은 7-8일이나 지난 후라니… 정신이 아득하다.

2008년 8월의 한 가운데, 나는 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뜨겁고 외딴 곳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다. 짙푸른 하늘 너머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은 바싹 마른 황무지의 누런 흙바닥을 달궈 복사열을 뿜어낸다. 돌풍에 실려 온 모래는 얼굴을 때려 따끔거린다. 입 안에선 모래가 씹힌다. 솟아나는 땀은 메마른 공기에 금세 하얀 소금자국으로 바뀌고, 모래먼지와 버무려지며 피부에 누런 분칠을 한다. 결코 `인간 친화적` 환경이 아님에도, 생애 첫 고비사막 공룡탐사(제3차 한국-몽골 국제 공룡탐사)에 참여한 내 얼굴엔 기대와 흥분이 사막의 태양처럼 달아올랐다. 장마 후 본격적인 무더위에 휩싸여 있을 한국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곳은 쾌적하다 할 수도 있었다.

탐사 첫 날 오전, 베이스캠프로 다시 모일 시간만 약속한 뒤, 대원들은 본격 탐사에 나선다. 지도도 없는 사막에서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오직 손바닥 반만 한 위성항법장치 GPS단말기. 조그만 액정에 캠프 좌표를 표시하고 각자 뿔뿔이 흩어진다. 묵직한 배낭엔 암석을 깰 큰 망치, 채집한 화석을 담을 자루와 비닐봉투, 줄자, 접착제, 각종 필기구, 방수자켓과 생명과도 같은 물통을 담았다. 어깨에는 탐사현장을 촬영할 카메라를 걸었다. 왼손엔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남부 고비사막 힐멘자브(Hermiin Tsav)에 이르기까지 약 1000㎞의 여정을 기록해온 노트가, 오른 손엔 언제든 의심 가는 암석을 깨고 들춰볼 수 있는 작은 망치가 들려 있다. 희고 붉게 드러난 백악기 퇴적층의 계곡.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새롭다.

그런데, 나는 한껏 들뜬 마음에 이곳이 `사막`이라는 사실과, 탐사경험이 일천한 애송이인 나 자신을 간과하고 있었다. 한 곳에서 현장사진을 찍다가 그 소중한 노트를 깜빡 놓아두고 지나온 것이다. 복귀시간에 맞춰 느긋하게 걸어가던 길은 순간 꼬여버렸고, 황급히 GPS수신기에 기록된 트래킹 코스를 되밟아 왔던 길을 돌아갔다. 다행히 노트를 되찾은 나는 시간을 만회하려 뛰다시피 캠프로 향했다. 남은 거리는 이제 백여 미터. 그런데 보이질 않는다. 노트를 찾는다며 돌아갈 때 봐두었던 지형지물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캠프와 나 사이에 놓인 힐멘자브의 계곡들은 마치 미노타우루스의 미궁처럼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계곡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긴장과 공포에 잠식되어갈 무렵,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기다시피 올라간 계곡 위의 언덕. 시야가 트이며 비로소 `지척`에 있던 베이스캠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오후 나는 새로 발견된 화석발굴 작업에 따라 나섰지만, 결국 컨디션 난조로 중간에 혼자 캠프로 돌아와야 했고, 평생 처음 느끼는 극도의 피로감으로 긴장이 풀리며 길바닥 그늘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가지고간 물도 마른 스펀지처럼 순식간에 다 빨아들였다. 몇 시간을 뻗어 쉬고 나서야 겨우 복귀한 고비사막의 첫 탐사일, 애송이에겐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33도까지 오르는 열대야에 3일간 진을 빼긴 했지만, 다행히 예정보다 일찍 에어컨이 수리됐다. 이제 이 문명의 이기 덕분에 남은 여름 무더위는 잘 넘길 수는 있으리라. 그럼에도 새삼 정수리를 쪼아대는 뜨거운 태양과 사막의 열풍, 황무지의 흙냄새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그곳이 바로 `공룡화석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이항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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