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경 충남대 소비자학과 교수
구혜경 충남대 소비자학과 교수
`가상`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단어처럼 아이러니컬한 관계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가상현실, 가상세계라는 말을 제법 익숙하게 쓴다. 현실 세계에서 쓸 돈도 모자랄 것 같은데, 가상세계에서까지 소비가 이뤄진다. 2009년 영화 아바타가 개봉되면서 그 후 가상세계나 가상현실에서 나를 대신하는 존재인 아바타 개념도 보편화됐다. 게다가 최근에는 `부캐` 열풍이 불면서 마침내 본연의 나와 활동하는 내가 달라질 수도 있게 됐다. 아바타가 조종의 대상이라면 부캐는 나의 다른 모습 즉, `소중한 나`의 다른 버전이다.

가상현실, 가상세계의 구현은 그동안 3D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이는 일상생활을 위한 직접적인 소비 용도보다는 재난훈련에 활용하거나 영화적 장치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한 것으로 이해했었다. 현재는 어떠한가? 가상공간의 나는 게임메이트들과 실시간으로 전쟁이나 축구 등 다양한 게임을 할 수 있고, 과학관에서나 체험할 수 있었던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도 간단한 기기만 있으면 집에서 구현이 가능하게 됐다. 최근 서비스를 재개한 싸이월드의 초창기 기억이 생생하다. 미니홈피가 한창이던 그 시절, 내 방, 내 아바타 꾸미기는 이용자들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도토리라는 가상화폐로 꾸미기 아이템들을 얼마나 샀었던가! 이제는 하나의 추억이 됐다.

요즈음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메타버스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수다를 떨고, 놀이를 한다. 실제로 한 대학은 입학식을 메타버스에서 진행한 바 있고, 굴지의 대기업은 신입사원 교육 수료식을 메타버스에서 진행했다. 이 외에도 오랜만에 컴백하는 아이돌그룹이 메타버스에서 컴백쇼를 한 바 있고, 정치권에도 메타버스에서 회의를 검토해보겠다고 한다.

처음 메타버스 개념을 접했을 때만 해도 젊은이들이나 관련 기술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메타버스 안에서 교육도, 놀이도, 문화공연 관람도, 여행도, 쇼핑도 가능하다. 아직은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등 게임 이용자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으나 MS나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기업들이 메타버스 사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준비중이다. 메타버스 관련 세계 시장규모가 2025년에 300조 원 이상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관련 기술 시장규모까지 모두 합쳐 본다면 2030년까지 약 1700조 원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본다.

아직은 메타버스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고, 게임을 즐기는 공간 정도로 기능하고 있지만, 인터넷을 메타버스가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메타버스에 내가 다니는 학교가 생기고, 직장이 생기고, 백화점이나 편의점 등 쇼핑 공간이 생겨 실제 내가 사는 현실이 그대로 구현된다면? 혼합현실 더 나아가 확장현실 기술을 활용한 해외여행도 가능해진다면? 과연 가상공간에서의 삶을 아바타의 삶 혹은 부캐의 삶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 외에 명품이나 자동차 기업들도 메타버스에 진출했다. 내 아바타에게 실체도 없는 자동차와 명품가방이 정말 필요한 것일까?

이미 가상공간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벌고, 모으고, 투자하는 일련의 경제활동이 가상세계에 존재한다. 현실의 화폐와 동일한 가치를 갖지는 않기에 가상세계에서는 고급 승용차나 명품을 조금 더 쉽게 살 수 있고 쇼핑을 즐길 수 있다. 현실에서는 어렵지만 나의 부캐가 그 세계에서 멋지게 살 수 있다면? `소중한 나`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투자는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가상세계에서의 소비는 좀 더 과감하고 공격적일 수도 있다. 더욱이 최근 메타버스가 상당히 `힙`하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에서의 삶에, 그곳에서의 소비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소비경험은 즐거울 것이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가상세계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률이 마련되지 않았고, 어떤 소비자 문제가 발생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가상공간이라고 해도 결국 행동의 책임은 `본캐`인 내가 져야 하므로 보다 신중한 소비결정이 필요하다. 구혜경 충남대 소비자학과 교수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