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아프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게 점령당했다. 현대사에서 무장반군 집단이 총한방 쏘지 않고 주권국 수도를 무혈점령한 역사적 사건이다. 많은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성급한 철군결정을 지적하며 미국의 책임이라고 비난한다.

국가의 멸망은 외부침략보다 내부붕괴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서구의 쇠락`은 로마제국이 476년 `조용히` 멸망한 원인을 두고, "단일의 결정적 사건/패전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진 과정"으로 진단했다. 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우구스툴루스가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폐위된 것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도 국가패망의 원인으로 권력층 독재, 국민의 애국심 상실, 내부 분열을 꼽았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아프간인, 그 중에서 국가방위를 책임진 군대가 져야 할 것이다.

탈레반의 거침없는 진격을 가로막아야 했을 아프간군은 `한여름 태양아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30만 명의 아프간군은 미국이 20년간 약 100조 원을 들여, 항공기(공격용헬기/전투기 등) 200대, 전투차량(험비 등) 수천대 및 최신예 야포 같은 최신예 무기를 두루 갖춘 `현대식` 군대였다. 이런 군대가 제대로 싸움 한번 하지 않고 AK소총 만으로 무장한 반군들에게 `무조건 항복`한 것이다. 어쩌다 `당나라군대` 같은 오합지졸이 됐나?

아프간의 `나쁜 정치`가 군대몰락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가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야권의 반발로 나라가 분열됐다. 아프간 사회는 복잡한 부족, 씨족, 인종 문제가 얽혀있다. 이들은 다툼의 70% 이상을 `비공식적`으로 해결한다. 그래서 `법치`가 어렵다. 가니 대통령은 다양한 부족·인종들로 구성된 군대의 충성심을 `국가적 대의`로 결집시키지 못했다. 탈레반이 진군을 개시하자, 부족·씨족집단은 군인들에게 `평화적 항복`을 권유했다. 탈레반도 이들에게 `사면`을 허용하며 군대해산을 유도했다. 대통령은 각 주(駐)의 사령관들에게 탈레반과 맞서라며 병력동원을 명령했지만, 단 1명의 장병도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홍길동 군대`의 `끝판`이다.

다음으로 아프간군은 탈레반과 싸울 `능력`은 있지만 `의지`가 없었다. 비공식적 혈연집단이 지배적인 전통사회에서 현대적 의미의 국민군대는 존재하기 어렵다. 일례로 같은 이슬람에 뿌리를 둔 수니파·시아파는 1000년 넘게 서로를 적대시하며 싸운다. 같은 군대에서도 시아파 장병이 수니파 간부의 지휘를 받는 경우는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현대 국민군대에게 충성의 대상은 넓게는 헌법적 가치, 좁게는 군통수권자(개인 아닌 직책)다. 충성대상의 부재는 전투의지 결여로 나타난다. 결국 `나쁜 정치`는 지도부의 부정부패, 무능, 불신과 함께 아프간군의 충성대상을 문민정부와 헌법가치로부터 탈레반으로 돌려놓았다.

아프간군의 붕괴를 촉발한 요인 가운데 `군계약업체`의 철수도 주목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 주둔미군과 함께 계약업자도 철수대상에 포함시켰다. 아프간군은 수리·유지보수·연료보급·훈련 등 부대운용 모든 측면에서 이들에 크게 의존했다. 올해 봄 기준으로 1만 8000명 이상의 계약업자 중에서, 40%가 병참·유지관리 및 훈련 담당이다. 공군의 경우가 더 심각했다. 이들은 광활한 아프간 전역에 산재한 수백개 전초기지에 물자·인원·장비 보급 및 후송, 나아가 포위된 지상군에 대한 항공지원에 필수적이다. 이들이 철수하자 아프간군의 사기가 급속히 와해됐다.

아프간군 몰락은 상기 요인들의 복합적 결과다. 특히 미국은 아프간에 온갖 최신예 장비·무기를 제공했지만, `정신` 만큼은 심어주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미군의 교리·제도·무기체계·훈련으로 무장한 우리 군에게 `싸울 의지`가 있는가?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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