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 만료 앞두고 이사 계획 어려움 가중
자금 마련못해 월세·외곽 지역으로 눈 돌리기도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압박에 일부 시중은행들이 `대출 중단`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에 따라 농협은행은 오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신규 가계 부동산담보대출 취급을 모두 중단한다. 한 직장인이 온라인 대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정민지 기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압박에 일부 시중은행들이 `대출 중단`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에 따라 농협은행은 오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신규 가계 부동산담보대출 취급을 모두 중단한다. 한 직장인이 온라인 대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정민지 기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에 일부 은행들이 `대출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실수요자들이 대출절벽에 맞닥뜨렸다. 사전 예고도 없이 막힌 대출 길목에 당장 이사를 앞둔 무주택자 등 금융소비자들의 불안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매매·전세가에 대출절벽까지 겹치며 서민들의 주거안정은 요원해지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우리은행·SC제일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한시적으로 신규 가계대출 판매 중단에 나섰다. 여기에 제2금융권인 지역 농·축협도 다음 주부터 집단대출을 일시 중단하고, 대출자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현행 60%에서 40-5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상태다. 지난 4월 가계대출 증가율을 연간 6% 이내로 억제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판매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한국은행의 `2021년 7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40조 1965억 원이다. 전달보다 9조 7320억 원 늘어난 규모다. 지난해 같은 기간(936조 5000억 원)과 비교하면 100조 원 이상 불어났다. 이미 상반기 가계부채가 급증한 만큼 연간 목표치인 6% 이내를 달성하기 위해선 대출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대폭 높이자 무주택 서민 등 대출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불만과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특히 대출금리 인상을 넘어 신규 대출을 아예 중단하는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나오면서 기존 대출한도에 맞춰 이사를 준비하거나 기존 대출 만기를 앞둔 실수요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정부가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는 날선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전 유성구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30대 정 모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 기간이 곧 만료돼 전세자금 신규 대출을 받아 다른 전셋집으로 이사할 계획이었는데 주거래 은행이 전세자금 신규대출을 중단해 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전셋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당장 대출까지 막히면 월세를 급하게 찾거나 외곽으로 이사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최 모(48·중구) 씨는 "자녀 대학등록금과 부모님 병원비 등으로 목돈이 필요한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대출이 중단돼 당황스럽다"며 "신용대출 한도도 연소득 이내로 제한된 상황에서 주거래 가계대출이 전면 중단돼 다른 은행을 급하게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금융권에서도 실수요자 대출 경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역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가계부채를 줄이라는 금융당국의 압박과 신호에 일부 은행이 사실상 대출중단으로 백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실패한 정부가 패닉바잉을 잡겠다며 대출규제에 나섰지만 실수요자들이 `대출패닉`으로 빠져 드는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부의 주택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수직상승하고 전셋값마저 동반상승하는 과열된 시장구조에서 대출은 서민들에게 유일한 레버리지일 것"이라며 "대출 제한이 서민들의 내 집 마련과 주거 안정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문승현·정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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