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용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최기용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가끔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으면 나는 `물`을 연구한다고 답한다. 원자력전공자가 웬 물이냐고 질문이 이어지면 전문용어를 조금 섞어서 `열수력`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물이 흐를 때 압력과 힘의 변화, 끓거나 얼어 상(相)이 변할 때 열전달 과정 등을 연구해 원자력 시설의 안전을 연구한다고 덧붙인다. 일반인이 원자력과 물을 연관시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 나는 `물`(유체)을 연구한다. 원자로에서 우라늄이 핵분열할 때, 아인슈타인의 E=mc2 법칙에 따라 발생하는 엄청난 열에너지는 냉각수를 증기로 전환한다. 이 증기의 운동에너지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원자력발전의 기본원리다. 물은 핵분열 때 생성되는 고속의 중성자를 저속의 중성자로 감속시켜 `핵분열 연쇄반응`을 이끌어내는 감속재의 역할도 맡는다. 이렇듯 물은 원자로 설계에 필수적인 냉각재와 감속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국내 가압경수로는 물을 약 150기압으로 가압해 사용한다. 150기압은 A4용지의 면적을 94톤의 무게로 누르는 매우 높은 압력이다. 이렇게 압력이 높으면 물은 섭씨 342도까지 끓지 않고 액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액체 상태의 물이 기체 상태의 증기보다 핵연료를 식히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물은 압력, 온도가 높고 낮음에 따라 끊는 점, 어는 점, 밀도, 점도, 열전도도, 표면장력 등 다양한 물리적 성질이 변한다. 그러므로 원자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물의 변화 또한 잘 이해해야 한다.

물질의 물리적 성질 중 `밀도`는 단위 부피를 차지하는 질량을 의미하는데, 흔히 알고 있듯 물 1ℓ는 1㎏이다. 물질은 조건에 따라 기체, 액체, 고체로 상(相)이 변하는데 고체로 갈수록 분자 간 인력이 커져 밀도가 증가한다. 그러나 오직 물만이 이런 규칙을 무시하고 섭씨 4도에서 가장 높은 밀도를 갖는다. 얼음이 고체임에도 액체 상태의 물 위에 뜨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 분자는 섭씨 4도 이하가 되면 수소결합을 이용해 응결하기 시작하는데, 물만이 육각형의 모양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육각형 안 넓은 빈 공간으로 부피가 증가하고 밀도가 감소한다. 왜 육각형 모양의 결정을 형성하는지는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이런 물의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물속에 사는 생명체는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다. 호수가 아무리 깊다 한들 한 겨울 호수 빙판 아래 물의 온도는 모든 깊이에서 정확히 섭씨 4도다. 이는 호수가 어는 과정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호수 표면에 위치한 물의 온도가 낮아지고 밀도가 높아진다. 즉, 표면의 물은 무거워져서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호수 속은 바닥부터 섭씨 4도의 물로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4도의 물이 표면까지 다 쌓이면 비로소 표면의 물이 4도씨 이하로 내려가게 되는데 이제부터는 밀도가 낮아지므로,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서 0도씨까지 내려가고 결국 얼게 된다. 이런 이유로 호수 빙판 밑 물의 온도는 바닥까지 정확히 4도씨인 것이다. 만약 물의 밀도가 다른 물질들과 마찬가지로 고체로 갈수록 높아진다면 추운 겨울 호수 바닥에 얼음이 차곡차곡 가라앉아 호수는 전체가 얼어버릴 것이고 호수에 사는 생명체는 겨울을 나지 못할 것이다.

물은 이런 독특한 특징으로 원자력발전에서 냉각재와 감속재로 뛰어난 역할을 수행하고, 또 이 땅에서 생명체가 지속가능하도록 해주는 매우 고마운 존재다. 나는 이렇듯 신비롭고 오묘한 `물`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연구할 것이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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