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 변호사
윤학 변호사
선배 변호사와 함께 현장검증을 가게 되었다. "윤 변호사, 한 달에 얼마나 벌어?" 내 수입을 솔직하게 말했더니 "나보다 수입이 세 배나 많구먼!" 놀라는 것이었다. 부장판사를 지낸 그의 수입이 초짜 변호사인 나보다 훨씬 적다니… 나도 놀랐다. 경력이든 인맥이든 내놓을 것 없는 나에게 그 선배가 비결을 물었다.

판검사도 한 적 없던 내가 사무실을 열자 사람들은 브로커라도 써야 사무실 유지라도 할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업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내 사무실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법조 고위직 출신이나 브로커를 쓰는 사무실에 가보면 손님이 북적북적했지만 무슨 배짱인지 그런 변호사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부인이 찾아와 남편들이 집행유예 기간 중에 더 큰 죄를 저지르고 구속되었다며 "석방시킬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건을 맡으면 직원 월급도 주고, 월세도 낼 수 있었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남편의 죄가 커서 힘들겠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고객을 놓칠 것이 뻔했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한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변호사님! 이 사건 맡아주세요"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 부인은 말했다. "법무부 장관,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도 만났어요. 수임료만 많이 주면 석방시킬 수 있을 듯이 말했습니다. 내가 바보입니까? 나는 세운상가 일등 장사꾼입니다. 얼굴만 봐도 거짓말하는지 정직하게 말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어요. 변호사님은 믿고 맡길 수 있겠어요. 비용은 얼마 드리면 되나요?"

2백만 원이라고 하자 부인은 백만 원권 수표 30장을 내밀었다. 어차피 선임료로 쓰려고 가지고 다닌 돈이라며. 1987년 당시 3천만 원이면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다. 나는 내가 말한 수임료만 받았다. 부인은 날마다 "돈이 더 필요하지 않으세요?" 하며 전화로 물어왔다. 전 재산 7백만 원으로 전세 살고 있던 처지였지만 나는 끝내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다른 부인이 전직 법무부 장관을 5천만 원에 선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괜히 신바람이 났다. 열심히 변호했더니 내가 맡은 그 남편이 더 빨리 석방되었다. 그 부인이 손님을, 그 손님이 또 손님을 소개해주어 내 사무실엔 손님이 줄을 이었다. `전관예우`도 현실을 왜곡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이었다.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기만 하면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그 후로도 체험하고 또 체험했다. 돈벌이도 어릴 적 책에서 읽은 대로 되는 것이 신기했다. 가슴속에 새긴 대로 살아가려는 순수한 마음! 나는 그것을 `선(善) 자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아무리 음식을 많이 먹어도 인슐린이 없으면 양분이 세포 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 세포는 굶어 죽고, 체내 독소로 남아 질병을 일으킨다.

음식이 좀 부족해도 인슐린이 있으면 세포가 살 수 있듯이 물적·인적 자원이 부족해도 내게 `선 자원`만 있으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아무리 많은 재산과 권력, 지위를 쌓아도 `선 자원`이 없으면 남에게 해만 끼치고 결국 자신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수없이 보면서 그 확신은 더욱 커져갔다.

그런데 우리는 학력, 인맥, 경력만 높이 높이 쌓으려고 한다. 정작 삶에 가장 중요한 `선 자원`은 외면한 채!

"남편이 착해 빠져서, 아들이 요령 없어서 돈을 못 번다"고 하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마치 좀 속일 줄도 알아야만 돈도 벌 수 있을 것처럼… 그 결과가 어떻던가.

다행히 `선 자원`은 우리 마음속에 무한히 잠자고 있다. 누구나 깨우기만 하면 무진장 캐낼 수 있다. 초라한 경력과 재산이라도 `선 자원`과 함께 할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던가. 이보다 더 신나는 삶은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우리에게 대립과 투쟁을 부추기지만 `선`이 `자원`이라는 `선 자원론`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 모두가 훨씬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 거라고 그 선배에게 말했다. 인류가 자원 전쟁 없이 경쟁하지 않고도 잘살 거라며… 그러자 선배는 `선`을 `자원`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웃었다. 하지만 그가 까마득한 후배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 것도 잠자고 있던 선배의 `선 자원`이 깨어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윤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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