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시간이다. 미국의 경우 반바지 차림으로 집 근처 아무 골프장이나 가서 간단히 9홀을 돌고 집까지 돌아오는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물론 그냥 지나치기 힘든 소위 `19홀`을 빼고 운동만 한다면 그렇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9홀 플레이가 안 되는데다 골프장까지 가는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린다. 대부분의 골퍼는 집과 골프장이 멀리 떨어져 있다. 교통체증도 심하다. 왕복에만 두세 시간은 쉽게 더 걸리는데다 라운드만 해도 다섯 시간은 필요하다. 하루가 꼬박 필요하다. 사실 미국에서도 골프가 부자들의 스포츠로 인식되는 것은 다른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건강도 잃기 쉽다. 혹자는 `갈비뼈에 금 가보지 않은 골퍼는 아직 입문한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어깨와 손목, 발목 그리고 숙명처럼 견뎌야 할 허릿병. 직장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 골프 치다 허리가 아파 세 번이나 입원해야 했다. 끙끙거리며 침대에 누워 상사가 보낸 난의 `쾌유를 빕니다`는 문구를 볼 때마다 서늘했다.
가장 큰 손실 중 하나는 바로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어떤 때는 슬라이스가 나 OB 말뚝 바깥으로 사라지는 볼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때는 그린 앞에서 토핑을 내 총알처럼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외친다. "에라이... xx 같은 xx야!"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고 때로는 그 실수로 인해 큰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런 일들은 골프장에서 잃어버리는 두 세타보다 더 중요하고 피해가 클 가능성이 많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오면서 잘 버텨왔고 잘 회복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당연히 코스위에서도.
골프 때문에 좋은 친구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봤다. 골프장에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유령이 떠돌아다닌다. 바로 `오늘만은 다르리`라는 `스코어 유령`이다. 이 유령에 사로잡히는 순간, 스코어에 집착하게 되고, 집착은 시샘을 낳으며, 시샘은 불화로 연결되고, 친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으로 떠나 버린다.
억대 연봉을 버는 `골프광` 선배가 있다. 그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골프장들이 그린피를 올린 것에 대해 누구보다도 분개한다. 골프장 사업주들이 골퍼를 위로하지는 않고 부당하게 이득을 올린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언제나 `젠틀맨`으로 존경받는 그는 항의의 표시로 골프를 끊었다. 그런데 가끔 전화를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는 `소신과의 싸움`에서 점점 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아, 세상에 골프를 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뭐가 있을까. 이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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