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희 세종시문화재단 공연사업본부장
유원희 세종시문화재단 공연사업본부장
우리가 편하게 사용하는 한글,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한자나 영어를 사용하거나 또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세계적인 언어 정보 제공 사이트인 스페인 에스놀로그(ethnologue) 2021년 집계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모두 7097개이고 지난 1세기 동안 지구상에서 200여개가 사라졌고 2500개 언어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언어 중에서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는 250가지에 불과한데 한글의 순위는 20위다. 인구로 보면 우리 한반도에서 8200만 명이 사용하고 해외동포가 800여만 명, 기타 외국인등을 더하면 9000여만 명이 사용하며 인도네시아나 인도,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서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고 있어 1억 명 미만이 사용하거나 배우는 중이다.

한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600여 년 전 세종대왕에 의해 창제됐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음운학적 창제원리가 도입된 문자다. 그 과학적인 음운학적 원리 덕에 유네스코는 지난 1997년 한글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유네스코가 문맹 퇴치 기여자에게 주는 상의 이름은 세종대왕상이며 한글보급을 위해 전 세계에 세워진 한인학교는 19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한글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재해석하고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을 도외시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뚜렸해지고 있어 이제 정부가 나서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영어 단어가 넘치고 있다. 일례로 모이스쳐 선 라이트 프로텍터 등 알 수 없는 단어를 부친 화장품 제품이나 의류, 아파트 명칭 등 충분히 우리말로 번역하거나 제품명을 영어로 쓰지 않아도 되는데 더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들이 쓰는 학용품도 이제는 모두 영어를 사용하거나 외래어로 도배돼 있다. 기업체 이름도 KT, SK, DB, BL, KB, NH, 포스코, 코레일 등 영어로 속속 바꾸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에코프로비엠, 카카오게임즈 등 코스닥 시총 상위 10개 기업인 전체가 영어를 쓰고 상위 50개 기업 중 4개 기업 만이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코스피 기업의 상위 10개 기업 중 7개 기업이 영어를 혼용하고 있다. 물론 해외사업이 많거나 외국과 거래할 때는 그러한 명칭을 쓰는 것은 당연하나 국내에서 이렇게 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것이야 말로 사대주의의 시작이자 종속인 것이다.

1억 명이 채 사용하지 않는 한글은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까? 유네스코에서는 200년 이내에 한글이 소멸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한국외국어대 유재원 교수는 "한글의 100년 후가 걱정된다"며 아일랜드어를 예로 들었다. 아일랜드에서 영어와 함께 쓰이는 아일랜드어는 현재 아일랜드 인구의 2% 정도만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상류층부터 영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인도네시아어 자체가 사라지고 있고, 필리핀도 전통어인 따갈로그어가 영어에 밀려 점차 중요성이 희박해 지고 있다. 세종대왕이 창제할 때와 현재의 한글은 상당한 차이가 있고, 100여 년 전의 기미독립선언문은 당시로는 표준글인데 현재 사용되는 글과는 부사나 단어의 활용에서도 거리감이 있다. 말과 글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문명의 핵심은 언어와 문자다. 영어를 잘 못한다고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창피스러워 해야 한다. 우리글, 우리말을 우리가 사용하지 않으면 누가 사용할 것이며 누가 지켜줄 것인가? 이런 상태로 간다면 중국이나 일본에 우리의 한글이 우수하니 지켜달라고 읍소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유원희 세종시문화재단 공연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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