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이탈리아에서 퍼지기 시작한 흑사병은 아주 빠르게 전 유럽 인구의 1/3을 희생시키며 지옥의 세계를 만들었다. 당시 뾰족한 예방책도 치료도 없어 그저 종교적 주술에만 매달렸다. 급기야는 신의 노여움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가시채찍으로 자신의 온몸을 학대하는가 하면 곳곳에서 수많은 유태인을 집단학살하는 만행이 자행되었다. 이 역병은 몇 년이 지나며 감염시킬 만한 대상이 없어지자 점점 약화 되어 갔다. 이후 사회와 체제, 경제구조가 뿌리째 변화하며 중세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 기존 농노 형태의 소작농을 바탕으로 형성된 장원경제 체제가 무너지며 곳곳에 도시가 형성되고 상업자본이 축적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은 공포의 흑사병 터널을 벗어나 찬란한 예술, 문화, 과학, 의학 발전이라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제1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오늘날 박멸된 것으로 알려진 천연두는 남아메리카 잉카제국이 멸망하게 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1533년 스페인의 피사로가 이끈 162명의 침략군에 의하여 천연두에 감염된 잉카족은 전쟁 한번 제대로 못하고 멸망하였다. 잉카는 마추픽추라는 거대하고 정교한 석조물을 건축하였고 8만 명에 달하는 정예군대를 보유하였던 강력한 군주 국가였다. 잉카족은 침략군과 달리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도 없고 치료 방법도 없었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고열에 흉측하게 죽어가자 혼비백산하여 전의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1918년 미국에서 최초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독감도 불과 2년 만에 희생자가 수천만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1919년 까지 추정 사망자가 약 14만 명이란 기록도 있다. 그런데 20세기 중엽에 들어 페니실린이란 항생제 개발과 의료기술의 발전, 위생환경의 개선, 향상된 방역으로 전염병의 피해가 거의 없게 되어 정부, 학계나 의료계에서는 전염병의 종말을 예고하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반전이 된다. 2002년 구제역을 비롯하여 광우병, 에볼라, 사스, 메르스 등 전염병의 역습이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특히 2019년 말에 나타난 코로나 19 팬더믹은 많은 희생자 속출과 일상을 멈추게 하고 삶의 환경을 바꾸고 있어 21세기 흑사병이라 하기도 한다. 자유롭던 국제간의 교류가 단절되고 이웃과 만남도 관혼상제도 제약된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거리에는 다양한 마스크로 무장한 인간외계인들이 서로를 경계하는 낯선 풍경이 일상화되었다. 만남의 기피와 단절은 영상과 가상공간이라는 디지털세계의 가속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첨단과 효율성이란 측면에서는 우수한 시스템으로 평가되지만 대면과 교류의 갈구는 더욱 심화 되어 가고 있다. 유행 초기만 해도 현재의 과학과 의료, 제약 기술을 고려할 때 치료와 예방은 시간문제 정도로 치부하였다. 물론 영국, 미국 등 일부 국가는 백신 개발 덕분에 거의 일상의 정상화를 회복해가고는 있다.
문제는 백신도 대응책도 시원치 않아 이 암울한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다. 찜통더위를 마스크 중무장에 집콕으로 버티어 내는 민초들의 인내력도 한계점에 달한 것 같다. 허나 인류는 흑사병 이래 전염병의 창궐을 제압하고 더욱 발전된 세상을 만들어 온 DNA를 갖고 있다. 이제 코로나 19의 팬더믹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여야 한다. 정부는 조속히 충분한 백신 확보와 투명하고 수용 가능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국민 각자는 개인위생관리와 신체적 면역력 향상에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신체가 건강할 때 바이러스나 세균의 침투를 방어할 수 있으며 감염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매일 규칙적인 근력운동과 충분한 유산소 운동으로 강건한 체력 유지가 필수이다. 면역력 강화는 수시로 발생하는 역병 공습 시대에 건강한 생존을 위하여 지켜야 할 절대적 조건이다. 김동회 호서100년경영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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