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인류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이 끝났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열린 이번 도쿄올림픽은 개막 직전까지도 취소 여론이 거셌고, 결국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펼친 수준 높은 경쟁은 찬사를 받을만했다. 특히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육상은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를 추구하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꾸준히 경신되는 신기록들을 보며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0.01초로 승패가 갈리는 100m 달리기와 2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마라톤을 보며 순발력, 지구력 등 다양한 인간의 능력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스포츠 못지않게 과학에서도 시간은 중요하다. 자연에 숨겨진 원리를 밝히려면 순간적인 직관적 통찰은 물론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실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후 몇 년 안에 1000편이 넘는 논문이 쏟아져 나오며 의료기술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불과 6년 뒤에 1회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는 단기간의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는 실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마라톤과 같은 연구들도 많다.

이번 올림픽을 개최한 일본은 세대를 잇는 장인정신으로 유명한데, 연구에서도 마라톤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룬 성과들이 많다. 우선 이화학연구소(RIKEN)가 주도한 113번째 원소 `니호늄(Nh)`의 발견 과정을 살펴보자. 니호늄은 `일본`의 일본식 발음인 `니혼`에서 따온 것으로 동양권에서는 처음으로 발견하여 명명한 원소의 이름이다. 2003년 모리타 고스케 연구팀이 중이온가속기를 활용해 원소 발견에 착수하여, 이듬해 113번 원소 발견을 발표했지만, 원소 명명권을 가진 국제순수및응용화학연맹(IUPAC)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붕괴 과정이 이론적 예측과 어긋나 추가 검증이 필요했으나 이후 원소 합성이 계속 실패했다. 9년 뒤인 2012년에야 무려 400조 회의 충돌실험 끝에 합성에 성공하여, 2016년 비로소 원소명이 정식 등록됐다. 장기간에 걸친 연구자들의 집념도 존경스럽지만, 이들을 신뢰하고 지원한 RIKEN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중성미자 관측 시설 `카미오칸데` 사례도 매우 시사적이다. 기후현의 카미오카 광산 지하 1000m에 약 5000톤의 물탱크와 1000여 개의 광전자증폭관으로 구성된 이 입자검출기는 1983년 구축됐다. 그리고 1995년에는 10배 규모의 `슈퍼카미오칸데`로 발전하여 2개의 노벨물리학상을 만들어냈다. 고시바 마사토시가 카미오칸데로 마젤란 성운에서 발생한 초신성 폭발의 중성미자와 태양 중성미자를 관측해 2002년에 수상했고, 2015년에는 그의 제자 가지타 다카아키가 슈퍼카미오칸데로 중성미자 진동을 발견해 수상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약 8000억 원을 더 투입해 다시 `하이퍼카미오칸데`로 확대 구축 중이다. 1980년대에 시작한 연구가 스승에서 제자로 연결되고 시설 확장을 위한 재투자를 거듭해 4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반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 국내 대부분의 기초과학 연구과제 지원 기간은 3년에서 5년 정도다. 앞서 살펴본 일본의 사례들과 같이 10년 이상 장기 지원받는 과제는 매우 드물다. 필자가 재직 중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연구단 사업이 10년 단위 지원으로 운영되는 정도다. 물론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는 연구도 중요하며 이러한 연구결과들이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 올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획기적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기초과학 중에서 영원불멸의 주제인 우주 연구는 대규모의 자원, 많은 연구인력, 긴 시간의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경제에 도움이 되는 산업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이해해 인류의 근원적 질문에 답하는 것도 모두 과학기술의 역할이다. 따라서 단기성과를 기대하는 연구개발 못지않게,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근원적인 답을 추구하는 마라톤 같은 장기 연구도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한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 하성도 기초과학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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