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과거 민주당이 선거에 패할 때 마다 한말이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져서 민주당으로서는 선거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자기변명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정당지지율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보수?중도?진보 이념성을 말한다. 따라서 민주당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표현은 사회가 보수화되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는 민주당으로서는 개혁도 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진보가 소수라서 선거에 졌다는, 달리 말해 패패의 탓을 국민에게 돌리는 논리였다.

그러나 보수로 기울어졌던 이념의 운동장이 박근혜 정부 탄핵을 거치면서 다시 진보 우위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때부터는 보수 정당에서 반대 논리로 진보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자신들의 선거 패배를 변명하기도 했다.

그럼 왜 정치이념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하는가? 이는 이념지표, 정당지표, 지지율?득표율을 나무에 비교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나무에 비유하면, 이념지표는 뿌리, 정당지표는 줄기, 지지율이나 득표율은 과일에 해당된다. 따라서 자양분을 빨아들이는 뿌리가 튼튼하게 착근이 되어 있지 않으면, 비료나 영양분을 아무리 공급해도 수확은 빈약할 수밖에 없다. 줄기도 마찬가지다. 줄기가 튼튼해야 영양공급이 원활하고 많은 수확을 지탱할 수 있다. 따라서 여론에서 진보?보수 구도에서 밀리면 정당지지율도 밀리고 후보지지율 또는 선거 득표율도 밀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논리 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과거 우리 사회는 1987년 민주화 이전에는 보수 우위였다. 그러나 87체제 이후 차츰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룬다. 90년대 한길리서치 이념 조사에 의하면 보수·진보가 25%∼30%, 중도가 25% 안팎으로 보수?진보 간 5%p 이상 격차가 벌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비율은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항상 대선에서 보수-진보 진영 간 경쟁은 박빙이었다. 그래서 이 무렵 이념의 구도를 국민이 만들어준 `황금율`이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진보 간 균형은 노무현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까지 보수 우위가 된다. 바로 민주당이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탄핵부터 2020년 까지는 반대로 진보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다. 이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보수?진보 간 격차는 10%p 정도로 선거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올해 들어서면서 이념지표가 다시 균형을 잡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한길리서치 정기조사에 따르면 2020년 12월 보수(21.0%)와 진보(31.1%) 간 격차는 진보의 10.1%p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서울?부산 재보궐 선거와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을 거친 뒤 2021년 8월 현재는 보수(27.2%)와 진보(30.4%) 간 격차가 3.2%p로 오차범위 내 큰 의미가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다시 말해 운동장 논리로 말하면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40대 이상이 중심이 된 이념의 전장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고 그 대결도 가장 치열한 최후의 승부가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선거에서는 대통령을 잘할 후보가 아니라 이번 대결에서 이길 후보, 그리고 이겨서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시켜줄 후보가 앞서고 있다. 그만큼 감정이 격하고 치열한 대선이다.

이번 대선은 보수와 진보 누구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다. 즉 진보와 보수 진영이 아무리 강하게 서로 충돌하고 이념적 지지층이 다 결집해도 승부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다 보니 결국은 역대 선거에서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중도층이 선거를 결정한다. 단 이전과 다른 것은 전통적 중도층에 더해 탈이념의 2030세대까지 비슷한 표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누가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중도층과 2030의 표심을 잡아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패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국민을 탓할 것이 아니라 민심을 못 읽은 자신들을 탓해야 한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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