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 역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관한 것이고 200년 전 태어나셔서 26년 25일을 사셨던 신부님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한 부분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위인들의 전기를 통해 보았던 많은 위인들의 모습은 감히 따라할 수도 없는 범접하기 힘든 부분들을 서술해 놓은 경우가 많았다.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 보통의 위인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신분의 차이가 뚜렷한 조선시대 에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며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김 신부님의 말과 행동, 세상에서의 높은 지위와 많은 재물들을 포기했던 모습,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모습까지, 범인으로서는 다가가기 힘든 모습들 뿐이다. `나는`, `우리는` 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모습을 잘 바라보아야 하고, 그 모습을 우리의 삶 안으로 가져와야 하는 것일까?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이 잠잠해 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소상공인들은 피해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대유행의 멈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숨죽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국가를 위해, 시민들을 위해 `나`, `우리`의 희생과 인내의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더 길어야 하는 것인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실제로 고통을 겪고 있고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전혀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보자. 보통사람의 눈에 너무도 고귀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역시 보통사람이었다.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 달랐을 뿐이다.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의 눈에는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김 신부님도 우리도 똑같은 보통의 사람이다. 우리도 사랑한다면 그렇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신을 사랑해보자. 거의 모든 신은 사랑을 이야기한다. 신이라는 존재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역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그 신을 사랑한다면 그 신의 말씀을 지켜보도록 하자. 그러면 나는 사랑하는 존재가 될 것이고, 그 사랑을 통해 지금 나에게 처해진 어려움들을 파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들은 사랑을 통해, 그리고 그 사랑의 본보기가 되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모습을 통해 배워보고 살아가 보자. 김대건 신부의 삶이 궁금한 분들은 오는 14일부터 22일까지 당진시 솔뫼성지에서 열리는 여러 가지 행사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강대원 신부·대전교구 천주교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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