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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투명인간과 두 멋진 삶

2021-08-12 기사
편집 2021-08-12 07: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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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박정희 대전대 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
비트겐슈타인은 1·2차 세계 대전의 중심에서 삶을 살아낸 언어 철학자로, 그의 철학은 강박적인 그의 삶만큼 극적이다. 그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후기의 언어 사용 이론은 본질주의적인 전기 그림 이론에 대한 철저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은 죽기 며칠 전 의사에게 자신의 삶이 참으로 멋있었다고 사람들에게 전해달란 말을 남긴다. 멋있는 삶이라 하니 두 사람이 떠오른다. 한 사람은 최근 우주여행을 다녀온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며, 한 사람은 최근 3주기를 맞이한 노동운동가이자 휴머니스트인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이다.

제프 베조스의 저서 '발명과 방황' 서문에서 월터 아이작슨은 베조스가 소중한 지구를 지키기 위한 우주 식민지 개발의 꿈을 어려서부터 가졌다고 한다. 이 전기 작가는 다빈치나 아인슈타인이나 잡스 반열에 현존하는 인물을 올린다면 베조스일 거라며 그를 높게 평가한다. 결국 베조스는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을 설립하고, 1인 티켓에 2800만 달러(한화로 약 312억 원) 짜리 우주여행을 지난달 20일에 11분간 다녀왔다. 꿈의 첫발을 디딘 것이다. 상상력과 창의력과 변함없는 열정으로 꿈을 이뤘으니 참으로 멋진 삶이다.

그러나 베조스의 진짜 세계는 고객과 직원 덕분에 우주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그의 겸손한 감사의 언어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감사는 진정한 마음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감사는 진심이다. 그러나 미국 임금 평균을 훨씬 밑도는 아마존 직원들에 대한 그의 감사는 거짓이다. 그에게 아마존 투명인간들의 피와 땀은 감사 한 마디로 치환할 만큼 가벼운 것이다. 첫 소감 발표 후 여기저기 비난이 쏟아졌지만, 엄청난 기부금을 내고 며칠 안 가 비난은 사라지고, 신문과 인터넷은 그를 칭송하는 글들로 도배를 하고 있다. 기부금은 악덕을 세탁하고, 부자들의 사치가 정당하고 고맙기까지 하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노회찬은 대학에 다니다 용접공으로 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러가며 진보 정치인의 삶을 살았다. 그의 꿈은 우리 국민 모두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는 세상의 흐름을 잘 올라 탄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며 세상의 흐름을 바꾸려 한 사람이다. 그는 불법 취득한 정보로 삼성 X 파일의 떡값 검사 실명을 자신의 블로그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등 치열하게 불의와 싸우며 당을 이끄느라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일용직·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문제 등 그는 투명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났다. 가치 있는 꿈을 위해 산 그의 삶도 참으로 멋지다.

노회찬의 언어와 세계를 좀 더 들여다보자. 노회찬은 부자들이 암소갈비 대신 불고기를 먹으면 굶고 있는 사람들이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다며 부유세를 주장했다. 호주제 폐지와 카드 수수료 인하를 발의했고, 차별 받는 수많은 사람들과 현장에서 연대하며 소외된 서민들의 권리를 찾아주고자 했다. 그의 언어는 기득권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릴 정도로 날카롭지만 서민들에게는 통쾌하고 따듯하고 희망 가득한 언어다. 그의 언어는 앞뒤가 똑같은 시인의 언어다. 시인은 기부가 아니라 세금이어야 하고, 부자의 시혜가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권리가 되어야 하는 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노래했다.

한 사람은 투명인간을 보지 않았고, 한 사람은 투명인간만 보았다. 내달에는 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노회찬 3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영화 '노회찬 6411'이 개봉된다고 한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30년 더 살아보면 그가 꿈꾼 시대가 올까 희망해본다. 박정희 대전대 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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