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좋은 것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진료실에서 간혹 이 말이 다 맞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암에 좋은 음식 등이 언론에 소개되면, 그 음식만을 고집하다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긴다. 채식이 좋다면서 육류 섭취를 지나치게 줄여 균형 잡힌 영양 공급을 방해해 환자의 회복을 더디게 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좋은 것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득이 된다는 말은 한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까지는 득이 되지만 그 이상은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긍정`도 무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소위 성공이라는 기준은 그 끝이 없고, 이를 이루기 위한 경쟁은 지나치게 과열되고 한편으로 권장되기도 한다. 통계와 수치는 우리나라가 이제 빈곤의 어려움을 벗어나 외형상 풍요의 시대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예전보다 분명히 더 가졌지만 더 건강한 사회가 되었을까?

긍정의 가치관이 넘쳐나고 실적과 성과가 대우받는 이 사회에서 왜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는 우울감과 전 연령층에 나타나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높은 자살률은 무던한 나 같은 의사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잠깐 석학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교수는 역저 `피로사회`에서 우리의 사회를 이렇게 묘사한다. 현재는 업적과 개인이 중요시되는 `성과사회`이며 `긍정의 과잉` 시대다. 이런 환경 속에 개인은 끊임없는 무한경쟁에 빠지게 된다. 악순환 속에서 결국 자기 자신 즉 자아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시작은 했지만 끝이 없는 소모적인 일상에 피로해지고 탈진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피로감과 소진은 사회 구성원의 우울증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외로움의 근원이 결핍이 아니라 과장된 풍요, 긍정의 과발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의 과잉은 잠깐은 유효할지 몰라도 지속 가능한 가치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정보의 홍수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정보는 최대한 다수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올바른 진리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현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새로운 궁금증이 생기고 진실이라고 여겼던 것에 반대되는 이야기가 새로운 진실이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정보 속에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참이라고 여길 수가 없게 된다. 이쯤 되면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이 더욱 와 닿는다. 넘쳐나는 정보는 오히려 공해가 되고, 제한된 두뇌 처리 능력은 한계치에 다다라 탈진하게 된다.

인생이 어찌 보면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다면 건강하게 살 필요가 있다. 건강의 의미는 연장된 수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존기간 유지될 수 있는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다. 긍정적인 가치일지라도 지나치면 우리의 자아를 소진시킬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작정 나아갈 수만은 없다. 인생이라는 엔진에 좋은 기름만 붓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빠르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춰 설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 지속되고, 지치지 않게 할 그 무엇이 필요하다. 시인 박재삼은 `천년의 바람`이라는 시에서 천년 동안 줄기차게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의 장난을 이야기한다. 힐끗힐끗 주변에 동요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지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쉽게 지칠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얼마나 정확하게 꼬집어 말하고 있는가.

이제 `적당하게`라는 말의 긍정적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나침을 경계하고, 균형을 강조하는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지나친 운동, 그리고 과한 성취욕구, 편식, 과식 이런 것들을 경계해야 건강이 유지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것을 찾아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환자에게 금쪽같은 조언을 한다.

"적당히 하세요. 제발."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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