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ETRI 오픈소스센터장
이승윤 ETRI 오픈소스센터장
글로벌 ICT 시장은 코로나와 함께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항 중 하나는 바로 반도체 분야의 기술발전과 시장성장, 그리고 지형변화일 것이다. 지난해 세계 경제는 코로나로 인해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은 상대적으로 성장세를 만들었던 특이한 해였다.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대비 약 8-10% 증가, 메모리 시장은 약 13-20% 증가할 것이라 전망됐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경제로의 전환은 소비패턴의 변화와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으로 인한 단말기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 또한, 인공지능(AI) 기술 활용 확산에 따른 반도체(GPU, TPU)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비메모리 시장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반도체 업계의 지형변화다. 즉 글로벌 ICT 기업의 선두 주자인 애플, 아마존, 구글, MS 등이 자체 칩 개발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미 애플은 인텔을 버리고 M1이라는 자체 개발 CPU를 탑재한 제품을 출시했다. 구글도 엔비디아보다 뛰어난 TPU V4를 개발했다. MS도 40년간 인텔과 윈텔동맹을 포기하고 암(ARM)기반 독자 칩 개발을 선언했다. 여기에 테슬라까지 자율주행차에 들어가는 칩을 자체 개발하는 등 글로벌 ICT 기업들의 자체적인 반도체 칩 개발 경쟁은 더욱 심화되며 기존 반도체 시장 생태계에 큰 변화를 만들고 있다.

이와 동시에 CPU 등 프로세서 칩 기술 자체도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기존 대부분 컴퓨터에서 사용 중인 폰 노이만 구조는 AI 분야와 같이 방대한 데이터 전송과 연산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병목현상을 초래하는 단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개발된 기술이 PIM(Processing In Memory)이며 삼성전자는 올해 2월 세계 최초로 PIM 기술을 활용해 메모리와 AI 프로세서를 하나로 결합한 HBM-PIM을 개발했다. ETRI도 지난해 초저전력 고효율 AI 반도체 `알데바란(AB9)`을 개발하는 등 관련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AI 기술은 반도체 설계 혁신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구글은 올해 네이처를 통해 "AI를 이용해 사람이 수개월 걸려 작업하던 반도체 칩 설계 작업을 단 6시간 만에 끝냈다"고 밝혔다. 즉, 인간의 도움 없이 AI 스스로 반도체 칩을 만드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율주행차, 5G와 AI 등 반도체 칩이 핵심인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AI 반도체를 활용한 시장 선점이 하드웨어 기반의 전략이라면 인프라를 확산시키기 위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를 통한 확산 전략이고 오픈소스가 그 전략적 도구다.

구글은 2015년 AI 플랫폼 텐서플로우를 무료 공개했다. 이듬해 AI 테스트 플랫폼인 딥마인드랩, 그리고 GPU, TPU 환경을 제공하는 AI 개발 환경인 코랩(CoLab) 역시 무료 공개했다. 구글뿐 아니라 페이스북, MS, IBM 등 AI 기술을 이끄는 대부분 글로벌 기업들은 오픈소스 생태계에 적극 투자를 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 덕분에 AI 분야는 더욱 빠르게 보급 확산되고 발전하고 있다.

당분간 AI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ICT 산업과 시장의 판도 변화는 반도체를 시작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음은 하드웨어 인프라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서비스(콘텐츠 포함) 분야에서도 새로운 지형변화가 예상된다.

따라서 선제적으로 미래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로 인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ICT 분야에서도 새로운 도전과 실패가 반복되면서 변화된 지형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럴 때 일수록 생존과 선도를 위한 전략적 시각이 필요한 때다. 앞으로의 10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어떠한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했던 마크 저커버그의 말이 생각나는 시점이다. 이승윤 ETRI 오픈소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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