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권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어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문재인 정권의 감사원장 임기를 끝내 못 채우고 물러 난지 꼭 37일 만의 일이다. 그는 출마 선언문을 통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며 출마의 변을 밝혔다. 장문의 출마선언문은 담담한 어조로 출마 동기를 설명하고 교육, 복지, 탈원전, 안보·외교, 자유와 인권 등에 대한 국정 운영 방향까지 제시했다.

최 전 원장의 대선 출마는 우리 정치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정권이 임명한 감사원장이 임기 6개월을 남겨두고 중도 사퇴한 것도 모자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원칙적으로 헌법이 보장한 감사원장의 사퇴와 대선 출마는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자리를 대선 출마를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했다는 의심을 받을 소지도 다분하다. 이런 국민 정서와 헌법 정신을 모를 리 없는 최 전 원장이다. 그럼에도 불구,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심정이 출마선언문에 잘 녹아 있다.

최 전 원장의 대선 출마는 공교롭게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지난 6월 29일 대선 출마와 닮은꼴이다. 두 대권 주자 모두 현 정권이 임명한 사정 기관의 수장으로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 사퇴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은 둘 다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고 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현 정권, 내 편 네 편으로 가르는 현 정권을 비판한 것도 똑같다. 문재인 정권이 이들을 대선 길목으로 내몰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야권 내 대선 지지율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참으로 기막힌 정치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최 전 원장의 출마는 집권 여당의 폭주와 오만에서 비롯됐지만 그의 도전이 현 정권 비판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출마선언문 말미에 지긋지긋한 정치적 내전을 끝내야 한다는 통합의 메시지는 주목할 만하다. 공교육 정상화, 사회안전망 정비, 에너지 정책 전면 재구축, 한미동맹을 통한 안보태세 구축 등 나름대로의 비전과 국정 방향도 밝혔다. 야권 내 경쟁자들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정책과 공약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진검승부를 벌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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